미국 3위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가 사모(私募)펀드인 서버러스 캐피털에 매각되고, 미국 포드 가문이 갖고 있는 포드자동차 주식 중 일부를 매각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 미국 자동차업계가 격변에 휩싸여 있다. 또 서버러스캐피털은 작년에 이미 GM의 할부금융사인 GMAC을 인수한 상태로 당장 GM·크라이슬러의 할부사업 공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임러크라이슬러 ‘합병 시너지’ 물거품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14일(현지시각) 크라이슬러를 서버러스에 74억5000만달러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크라이슬러가 독일 다임러그룹에 인수·합병된 지 9년만이다. 당초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것은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크라이슬러 같은 대중차 회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고급차 회사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결합은 한때 ‘제조업 인수·합병의 모범사례’로 평가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고유가(高油價) 등으로 크라이슬러 주력차종인 SUV·픽업트럭 판매가 급감하고, 점유율 유지를 위해 밀어내기식 할인을 남용하다가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 결과 크라이슬러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998년 16.1%에서 작년 12.9%로 떨어지면서 도요타에도 뒤처지고 말았다. 작년에만 15억달러 적자를 낸 크라이슬러는 모기업 다임러크라이슬러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독일 벤츠의 경영 상황까지 악화되는 바람에 결국 매각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번 크라이슬러 매각액수(74억5000만달러)는 1998년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당시 360억달러의 5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다임러가 매각에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준다.

◆크라이슬러 ‘제2차 구조조정’ 올 듯

서버러스는 크라이슬러 인수 뒤 비용 절감을 위한 강력한 구조조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으로 기업 수익성을 높인 뒤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은 서버러스 같은 사모펀드회사의 전형적 수법. 따라서 서버러스는 크라이슬러의 인건비 축소, 방만한 판매망 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버러스가 크라이슬러의 연금과 건강보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GM과 포드 등 다른 미국 자동차업체의 추가 구조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서버러스는 작년 GM의 할부금융사인 GMAC 지분 51%를 74억달러에 사들이고, 최근 자동차 부품회사 타워오토모티브를 10억달러에 매입하는 등 자동차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美 자동차업계 구조 재편

크라이슬러 매각과 더불어 포드의 창업주이자 대주주인 포드 가문이 포드의 지분 매각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포드 가문 모임에서 젊은 주주들이 ‘배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포드 주식을 더 보유할 필요가 있느냐’며 매각 의견을 제시했다. 포드 가문은 현재 포드 지분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매각 규모에 따라 포드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

포드는 작년 103년 역사상 가장 큰 126억달러 적자를 내는 등 판매 부진과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포드는 올해 1~4월 북미 판매가 작년보다 13% 감소했다.




▶서버러스캐피털

미국 최대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중 하나로 1992년 설립됐다. 파산 직전 기업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통해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수익을 올린다. 서버러스(Cerberu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머리 셋에 뱀 꼬리를 한 지옥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에서 따 왔다. 서버러스 회장은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2대 재무장관을 지낸 존 스노이며, 대변인은 댄 퀘일 전 부통령이다. 설립자 스티브 파인버그(Steve Feinberg·47)는 프린스턴대 테니스 챔피언과 공수부대 출신으로 사슴 사냥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유지분은 240억달러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