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미국 게임회사 블리자드(Blizzard)의 PC용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들어왔다. 게이머는 스타크래프트에서 인간의 후예인 ‘테란’, 정체불명의 괴물 ‘저그’, 높은 지능을 가진 우주인 ‘프로토스’ 등 3종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뒤 인터넷을 통해 다른 게이머와 전투를 벌인다. 테란의 피가 튀고, 괴물 저그의 벌어진 상처에선 진액이 흘러 나온다. 고상한 우주 종족인 프로토스는 죽으면 연기로 변해 사라진다.

▲블리자드가 만든 스타크래프트·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의 게임화면.

스타크래프트 10년째, 신경제와 문화를 만들다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 들어온 지 햇수로 10년이 됐다. 청소년들은 아직도 종족을 선택해 상대를 죽이는 이 게임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게임 판매량도 엄청나다. 스타크래프트 국내 유통을 맡은 한빛소프트는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를 약 450만장을 팔았다”고 밝혔다. 전 세계 판매량 950만장 가운데 거의 절반을 한국인이 사준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경제 시대를 상징한다. 1998년 초 전국에 100여개에 불과하던 PC방은 2년 만에 1만5000개로 늘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PC방으로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PC방에 앉아 있는 사람의 30%는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다.

전체 PC방 관련 경제효과 3조원 가운데 30%인 9000억원, PC방의 총 매출액 6000억원 중 1800억원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스타크래프트 경제학의 줄임말인 ‘스타크노믹스’라는 신조어를 제목으로 단 책까지 발간됐다.

스타크래프트만 잘해도 특기자로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등장했다. ‘테란의 황제’로 불리던 임요환처럼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 프로게이머도 탄생했다. 임씨의 팬클럽에는 수십만명이 가입했고, 그가 군입대할 때는 수많은 팬이 아쉬움을 표시했다.

블리자드에 밀리는 한국 온라인 게임 업계

블리자드의 대표작은 PC용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였다. 두 게임으로 한국 PC 게임 시장을 휩쓸던 블리자드는 2003년 한국지사를 세웠다. 블리자드는 이후 온라인 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를 내놓고 한국시장 평정에 나섰다.

블리자드코리아의 탄생에 한국 온라인 게임업체들은 분노했다.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온라인 게임 운영 노하우와 기술을 도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처음에는 WOW 게임 서비스를 대행할 한국측 파트너를 찾겠다며 국내 주요 게임업체들과 접촉했다.

스타크래프트의 기록적 성장을 지켜본 국내 게임업체는 대부분 블리자드와 제휴를 맺고 싶어했다. 당시 블리자드는 여러 업체와 협상을 하며 자료를 요구했고, 나아가 실사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체는 직원들의 연봉까지 블리자드에 제출했다고 한다. 당시 일에 대해 문의하자 블리자드코리아 관계자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블리자드는 한국에서 얼마를 벌었을까.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다. 본사 방침에 따라 게임 판매량, 이용자 숫자 등 매출 관련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블리자드 게임을 판매 대행한 한빛소프트는 스타크래프트를 450만장, 디아블로는 400만장 가량 팔았다. 게임 판매가격만 약 2000억~2500억원에 달한다. 블리자드는 이중 약 1100억원을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받아갔다. 또 최근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WOW도 지금까지 1500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막대한 이동통신 로열티를 받아가는 미국 퀄컴사에 빗대 “블리자드는 게임업계의 퀄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사장은 WOW에 접속해 동시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 숫자가 15만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으로 꼽히는 리니지1과 리니지2를 합친 것과 맞먹는 숫자다.

“돈벌이만 급급” 비판도

블리자드는 오는 19일 한국에서 신제품 출시계획을 처음 발표한다. 마이크 모하임 사장은 “19일 한국에서 열리는 게임축제인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WWI)’ 행사에서 한국 팬이 깜짝 놀랄 뉴스가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올린 스타크래프트의 후속작이 나올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한국사업을 더 키우겠다는 블리자드의 전략에 국내 게임업체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렇다 할 히트작 없이 침체상태인 국내 게임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블리자드가 다른 외국계 기업과 달리 사회공헌이나 환경보호 등 국내에 기여하는 바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청소년이 학교공부를 팽개치고 게임에만 매달리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는데도 블리자드는 당장 눈앞의 수익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판이다. 블리자드는 최근 소비자에게 불리한 피해보상 규정이 공정위의 심사를 받는 등 문제가 되자 이용자 약관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BMW·포드·볼보 등 외국 자동차 업체들은 환경개선 활동과 사회봉사를 적극 권장·후원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