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大選) 효과인가, 글로벌 주가 동조화 효과인가.

코스피지수가 1500선을 돌파했다. 1989년 3월 31일 처음 1000을 돌파한 후 무려 18년 1개월 만에 넘어선 1500이다. 500에서 1000으로 가기까지 걸린 1년 7개월에 비해 11배나 긴 시간이었다. 그만큼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도약했음을 알려주는 일대 사건이다.

주식시장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중국 증시 폭락 쇼크, 미국의 경기 위축 불안감으로 어두운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도 주가는 거북이걸음으로 꾸준히 상승, 강한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500선을 뚫어냈다. 이 같은 상승세의 배경을 놓고 증권가에선 ‘대통령 선거 효과’라는 주장이 등장,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효과가 있다”

최근 한국의 주가 상승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도해 왔다. 외국인은 작년 한 해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10조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매도액에서 매수액을 뺀 것)했지만, 올 들어서는 1조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수하고 있다.

외국인이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는 배경과 관련, 메릴린치증권 이남우 전무는 “정권 교체로 친(親) 시장적 정책이 쏟아질 경우 주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어 미리 한국 주식을 사겠다는 외국인들의 전화가 많다”면서 “최근 외국인 투자자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라고 전했다.

▲한국 증시가 주가지수 1500시대를 열었다. 9일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지수가 급등세를 보이며 1501.06으로 마감, 사상 처음으로 1500을 돌파했다.

실제로 최근 방한한 일부 외국 투자자들은 기업 방문은 제쳐두고 여·야당을 방문해, 대선의 향방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한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hedge fund) 관계자는 “한국은 정책 변동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정권의 향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 때문에 정당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메리츠증권 심재엽 애널리스트는 대선을 앞두고 이미 친 증시 정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북미 회담과 한·미 FTA, 생보사 상장 논의 등은 모두 증시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 뉴스이며, 앞으로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가 부양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적 추세일뿐”

반면 다른 전문가 그룹은 최근 주가 상승의 배경을 정치적 이유보다는 세계 증시 동반 상승의 일환으로 풀이하고 있다. 중국 주가 폭락 쇼크와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 등으로 촉발된 투자 심리 위축이 회복되면서 세계 증시가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실제로 올 들어 한국 주가가 4.6% 오르는 동안 미국·일본·독일·대만 등 세계 주가가 동반 상승했다.

또 지난주에 한국·브라질·멕시코·중국·대만 등 세계 13개 증시가 사상 최고치 혹은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우증권 홍성국 상무는 “특히 한국과 대만 주가가 동조화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최근 IT(정보기술) 업체의 실적이 바닥에 이르렀다는 판단으로 IT가 주력인 두 나라 주가가 동시에 오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중국 증시 폭락 쇼크가 진정된 직후인 3월 10일부터 4월 4일까지 한국과 대만에서 각각 약 4억달러와 2억2000만달러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한편 한·미 FTA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서도 전문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애널리스트는 “FTA 협상 타결이 신용등급 향상으로 연결된다면 상당한 호재”라고 말했다. 반면 한화증권 이종우 상무는 “FTA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면서 “최대 수혜주인 현대자동차 주가에도 큰 변동이 없는 것을 볼 때 단기 효과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대선 주가라면 랠리는 이제 시작

어느 쪽 주장이 맞느냐에 따라 향후 주가 전망도 크게 달라진다. 만일 대선 효과가 존재한다면, 앞으로도 정책적 호재가 끊임 없이 나오고, 외국인 매수세도 늘어나면서 해외 상황과 관련 없이 주가가 상승하는‘대선 랠리(단기 주가 급등)’가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메릴린치 이남우 전무는 이같은 시나리오를 전제로“앞으로 1~2년간 주가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최근의 주가 강세가 주로 해외 증시의 강세에 따른 것이라면, 향후 주가 역시 해외증시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비교적 안정된 움직임을 보일 전망이다. 한국증권 김학균 애널리스트는“해외 증시 강세에 따라 2분기까지는 한국 증시가 강세를 보이겠지만 3분기 이후로는 다소 조정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