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텔레콤이 지난해에만 1700억원 넘게 투자한 와이브로 서비스가 사업 실시 8개월이 지나도록 가입자가 151명에 불과해 사업이 존폐(存廢) 기로에 놓였다. 정보통신부가 차세대 중점 사업으로 정해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와이브로(WiBro·휴대인터넷)의 실적은 참담할 정도다. 향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신기술 후보가 왜 이렇게 흔들리는 것일까?

◆선장과 기관사 잃고 표류하는 와이브로호(號)=와이브로의 기술개발 주역은 정보통신부와 삼성전자다. 국내 최대 국책연구소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와이브로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삼성전자가 부담한 비용만 300억원이 넘는다.

당시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이기태 사장이 와이브로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었다. 두 사람은 "와이브로는 세계 통신 시장 특허전쟁에서 우리가 내세울 비장의 무기"라며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휴대전화에 이어 제2의 성공 신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 전 장관은 지금 벤처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이기태 부회장도 삼성전자 기술개발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이브로호(號)를 몰던 선장과 기관사가 이미 배에서 내린 셈이다.

처음 와이브로 서비스 사업권을 따낸 3개 업체 가운데 하나로텔레콤은 2005년 4월 일찌감치 사업을 포기했다. KT는 와이브로 사업을 위해 2005년 1000억, 2006년 3500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가입자 숫자는 906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을거리라는 사업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또 각 기업에서 와이브로 사업을 주도했던 핵심 임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나거나 사업에서 손을 뗐다. KT에서 와이브로 사업을 주도했던 홍원표 전무는 사표를 내고 삼성전자로 적을 옮겼다. 와이브로 사업이 표류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서비스 업체 "와이브로는 제 살 깎아먹기"=SK텔레콤은 올해 와이브로 투자 금액을 결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와이브로가 기술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그러나 통신업체들에 와이브로는 현재 주력 사업을 위협하는 적(敵)이다. 작년 SK텔레콤 매출의 약 29%가 데이터 통신에서 나왔다. 데이터 통신이란 휴대전화를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다. 와이브로 서비스를 확대할 경우, 데이터 통신 쪽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SK텔레콤이 와이브로 사업에 뛰어든 이유를 한마디로 '보험'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업체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벌여 힘든 경쟁을 하는 상황을 미리 막았다는 것이다.

KT도 사정은 비슷하다. KT는 KTF 지분을 50% 이상 가지고 있다. KTF는 오는 3월 시작하는 3.5세대 이동통신(HSDPA) 전국 서비스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다. 3.5세대 서비스는 화상전화가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이다. 4세대격인 와이브로보다는 기술적으로 약간 뒤지지만 3.5세대를 채택한 국가가 많아서 실질적으로 무선 인터넷 다음 세대 세계표준으로 유력하다. KT 남중수 사장은 "주요 도시에선 와이브로를, 지방에선 3.5세대 이동통신을 이용한 통합 서비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 중복투자가 일어나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통신업계엔 "우수한 기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많이 쓰는 기술이 우수한 것이다"란 격언이 있다. 삼성전자는 곧 미국 스프린트 넥스텔과 아리아링크(Arialink)를 비롯해 전 세계에 기술과 장비를 수출한다. 동양종합금융 리서치센터 최남곤 연구원은 "땅이 넓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선 빠르고 안정적인 와이브로가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 당사국이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라면 도입국가에선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업계에선 정부가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해외에 안착시키는 동시에 국내 이통사들이 수출을 위해 일방적인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