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모든법칙 통합 통일장이론 머잖아 등장"

지난해 노벨물리학을 수상한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학 헤라르뒤스
토프트(54) 교수가 서울대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공동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해 노벨상 수상과 관련 "한국의 고

이휘소 박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히기도 해 화제가

됐었다. 서울대 물리학부 조용민(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고문) 교수가 3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토프트 교수를 만나,

토프트 교수의 학문세계와 21세기 물리학계의 과제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편집자)

▲조용민 교수 =지난해 노벨상 수상 이후 크게 변한 것이 있습니까?

▲토프트 교수 =(노벨상 수상이) 어떤 면에서는 연구에 다소 방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초과학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조 =당신의 노벨상 연구업적을 좀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토프트 =기본입자들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이 모두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물리학자들은 '양자장론'으로 기술하는데, 항상 답이 무한대가 나오는
것이 문제였죠. 하지만 나는 재규격화방식을 사용해서 표준이론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표준이론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개의 힘인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 중 중력을 뺀
나머지 3개를 통합, 이들간의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이론)

▲조 =이휘소 박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토프트 =1970년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에서 열린 여름학술대회에서 이휘소
박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그는 유명한
입자물리학자였죠. 그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72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그가 나의 논문을 처음 인정해주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나의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도 나의 논문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연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 =양자역학분야에서 닐스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달랐는데,
당신은 양자역학에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토프트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을 확률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연계가 불분명한 것으로 기술되지 않는다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았다'는 말로 양자역학을 확률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보어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인슈타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연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은 기술하는 방식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알 수 없듯이 전체를 모르기 때문에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자연계는 결코 불분명한 것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조 =물리학계의 이론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통일장이론이 언제쯤 나올
것으로 보십니까?

▲토프트 =통일장이론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법칙들을 모두 기술할 수 있는 이론을 말합니다. 예전엔 전기와 자기를
전혀 다른 영역으로 알고 있었지만 전자기법칙이 나왔고, 전자기와
약력을 통합하는 전자기약력이 나온 만큼 분명 통일장이론은 머지않아
나올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20년 전부터 20년 후면 나올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물리학자들은 20년 후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입니다.

▲조 =20세기는 물리학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에도
물리학은 번창할 것으로 보십니까?

▲토프트 =현재 많은 사람들이 '표준이론이 잘 들어맞기 때문에 이제
물리학계는 더이상 번창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도 물리학자들은 고전이론이 잘 들어맞았기 때문에
'20세기에는 물리학이 더이상 번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저는 21세기에도 물리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이론이 등장, 물리학계가
계속해서 번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 =21세기 물리학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토프트 =기초과학은 언제 어디서 새로운 이론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21세기 물리학 향방을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 물리학문과 달리 생물물리학, 나노(nano=10억분의 1의
세계)물리학 등 새로운 분야의 물리학이 급부상할 것입니다.

▲조 =한국에서는 언제쯤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견하십니까?

▲토프트 =이휘소 박사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분명 노벨상을 수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노벨상을 받으려고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언제쯤 누가 노벨상을 받을 것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교육체계가 제대로
갖춰졌는지부터 먼저 검토해봐야 할 것입니다. 기초과학분야에서 젊은
사람들을 부지런히 교육시키는 것은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국력이 약하다고 자포자기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인터넷시대인 만큼 얼마든지 자신의 연구결과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기 때문에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노벨상을 못받았다고) 변명해서는
안됩니다.

▲조 =네널란드는 인구와 국토가 작지만 지금까지 과학분야에서만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냈습니다. 네덜란드가 기초과학의 강국으로 우뚝
선 비결은 뭔가요?

▲토프트 =우선 학문에 대한 전통이 중요합니다. 네덜란드는 지난
17세기부터 탄탄한 학문적 전통을 구축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적 체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국도 젊은 학생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그들이 노벨상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한다면
머지않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조 =한국처럼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는 대규모 연구를 위한 국제적
협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토프트 =그렇습니다. 유럽도 2차대전 후 미국으로의 두뇌유출이
심각했습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동으로
연구기관(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을 만들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도
서방의 연구력에 대항할 수 있는 공동연구기관을 만들면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연구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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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르뒤스 토프트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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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르뒤스 토프트 교수는 대학재학 시절부터 수재로 소문났으며, 지난
72년 24세에 쓴 박사학위논문이 27년이 지난 뒤에야 인정을 받아 당시
논문지도교수였던 옛 스승 마틴 벨트만 교수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에서 지난 72년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77년부터 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토프트 교수는 스승인 벨트만 교수와 함께 분자물리학 이론을 확고한
수학적 토대 위에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분자물리학
이론이 물질의 질량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입증해
냈다.

그는 또 서울대 물리학과의 'BK21사업' 공동연구자로 서울대와 함께
'초끈이론과 양자중력'을 연구할 계획이다.

( 차병학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