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최후의 24시간 ③ 서재 풍경 .

박 대통령은 오전 9시 쯤 2층 식당에서 일어나 1층 집무실로 내려
가는 계단으로 몸을 옮겼다.

"나 오늘 삽교천에…"
대통령은 "갔다 올 거야"라는 뒷 말을 망설이다 끝내 하지 않았다.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두 딸이 머리숙여 인사했다. 이것이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다.

박 대통령은 필기도구와 안경, 연설문 따위가 담긴 누런 가죽가방
을 직접 챙겨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내려왔다. 2층에서 1층으로
출근한 것이다.

김계원 실장은 이런 식의 출근이 대통령의 기분 전환에 문제가 있
다고 생각하여 별채건물을 지어 내실을 그 곳으로 옮기자고 건의했으나
청와대 건물에 돈을 쓰는 것을 싫어한 박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다.

대통령은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와 우측으로 난 문을 열고
집무실로 통하는 '전실'로 들어섰다. 부속실 역할을 하는 전실에는 박
학봉비서관과 이광형 부관이 교대로 '미스 리'라 불리는 이혜란과 함께
근무했다. 이광형 부관과 이혜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인사를
했다.

대통령의 가죽 가방은 이혜란이 받아 들었다.

박 대통령이 집무실로 들어가자 잠시 후 김계원 실장이 보고를 하
러 들어갔다. 김 실장은 정보부와 경찰에서 올라온 1일 보고서를 노란
봉투에 넣어 대통령에게 올렸다. 평소에는 대통령이 봉투끝을 잘라 보
고서를 꺼내 읽어보지만 이날은 봉투째 서랍속에 집어 넣었다.

박정희의 집무실은 서재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군인출신이었지만
책 속에서 살았다. 이 서재 겸 집무실에는 약 6백권의 책이 꽂혀 있었
는데 소설이나 수필집,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세계대백과사전, 파월한국군전사, 난중일기, 박정희 대통령(중국어
판), 불확실성의 시대, 감사원 결산 감사 보고서,성경, 성경사전, 최수
운 연구, 단재 신채호 전집, 백두진 회고록, 지미 카터 자서전, 자본론
의 오역(일어판), 김일성(일어판), 사상범죄론, 한국 헌법, 다국적기업,
정경문화(잡지)….

'암살사연구'란 책도 있었다. 박종규 경호실장 시절인 1973년에 경
호실의 연구발전실에서 펴낸 상하권으로 된 책이었다. 세계 각국의 암
살 사례를 분석, 암살을 예방하는 방법을 개발하자는 취지로 쓰여진 책
이었다.

이 도서목록이 풍기는 분위기는 실용주의자의 그것이었다. 관념적
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실무적이고 물질적인 소재로 꽉 차 있었다.

집무실 비품들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있었다. 계산자, 돋보기, 은
단통, 소독솜통, 라디오, 정원수 정지용 톱, 그리고 부채와 파리채.

대통령은 기름을 절약한다고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않고 창문을 열
어놓고는 부채를 부치며 파리를 잡았다.

한번은 이광형 부관이 집무실에 들어갔는데 대통령이 더위를 먹은
듯 얼굴이 벌겋게 돼 있었다. 이 부관은 보일러실 직원을 불러 에어컨
을 정식으로 틀지말고 실내 공기순환만 시켜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 박 대통령은 가족과 식사를 하다 말고 근혜양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놈들이 에어컨을 틀었더군. 갑자기 시원해지던데 내가 모를 줄
알고. 앞으로는 절대 틀지 말라고 해".

비품 중에 재떨이가 없었던 것은 박 대통령이 말년에 금연을 선언
한 때문인데 간혹 한 개비씩 피우기도 하였다. 특히 아들 문제로 고민
할 때는 부속실 직원에게 담배를 가져오라고 하여 한 개비를 빼내 피웠
다.점심을 먹고는 김계원 실장을 불러 마치 고교생이 숨어서 담배 피우
듯 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건강 파수꾼 노릇을 했던 김병수 국군 서울
지구병원장이 말렸더니, 대통령은 "임마, 그러면 너는 뭣 때문에 있노?"
하더란 것이다.

서재에는 비디오 테이프도 몇 개 있었다. '일본 후지 텔레비전과의
인터뷰' '오원춘사건' '500MD 헬기' 등등이었다.

서재겸 집무실은 1967년에 청와대 본관을 증축하면서 기존의 벽을
헐고 방을 낸 것으로 약 40평 정도 됐다. 그때까지는 전실을 집무실로
사용해 왔다.

서재 남쪽 벽으로 출입문이 하나 있었다. 밖에는 잔디밭에 평행봉
과 철봉이 설치돼 있었다. 이 문 옆에는 가로 50cm 세로 80cm 가량되는
커다란 일력이 걸려 있었다. 매일 아침 부속실 직원이 청소부를 데리고
들어가 청소를 하면서 한 장씩 찢어 내고 있었다. 일력은 날짜만을 크
게 인쇄하고 연도와 달을 작게 표기한 것으로 1979년 10월 26일자가 걸
려있었다. 서재에 걸렸던 일력은 그 날로 영원히 고정되었다.

이 날 오전 9시20분 경 김 비서실장은 보고를 마치고 집무실을 나
왔다. 이때부터 대통령은 이날 결재할 서류를 모두 처리하고 일상적인
여타 업무도 거의 다 정리했다.

얼마 후 둔중한 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K-16'
성남비행장(현재 서울 비행장)에서 이륙한 석 대의 헬리콥터가 청와대
동편으로 날아와 지하벙커 지붕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막
넘어설 무렵이었다.

헬리콥터가 착륙한 직후 전실 입구 복도에 차지철 경호실장과 천병
득 수행과장이 도착했다. 김계원 비서실장도 2층 집무실에서 복도로 내
려왔다. 비서실장을 본 차 실장은 들으라는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비
서실장도 내려가는데 중정부장까지 거길 가려 하다니…이런 비상시국에
는 서울을 지켜야지…".

조금 전에 있었던 김재규 정보부장과의 통화내용에 관한 언급이었
다. 김계원은 일언반구 대응이 없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 이윽고 전실
문이 열리고 박대통령이 걸어 나왔다. 기다리던 세 사람은 인사했다.대
통령을 뒤따라 나온 이혜란이 박 대통령의 가죽가방을 천병득 과장에게
넘겨 주었다.

현관을 나서는 대통령의 뒤에서 미스 리와 이광형 부관이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했다. 대통령은 연신 콧노래에 맞춰 고개를 끄
덕임으로써 인사에 답했다.

본관 앞마당에는 대통령 전용차량 슈퍼 살롱과 비서실장 차량 및
경호차량 등 다섯 대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할 수행원
들과 관계 장관들이 차 옆으로 도열해 서 있다가 대통령을 보고 일제히
인사를 했다. 청와대 내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차에
는 김계원 비서실장이 대통령 왼쪽에 동승했다.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실장 모친이 편찮으신 모양인데, 내일 모레는 내가 찾지 않을 테니 고
향에 다녀 오시오"라고 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