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자율경쟁통해 스스로 살아남아야"/19세 가출 도일 와세다대
재학중 일인 도움 첫 사업/합법절차-질서 지키는게 민주사회/일 공무
원 뇌물주면 모욕으로 여겨/일 스스로 기술 제공하도록 분위기 조성해야
/일선 경영 전념할 수 있는데 한국선 정치권-은행 등에 절반이상 신경
쓴다 서울 롯데호텔 34층의 신격호 롯데그룹회장(72세) 집무실에는
일본 롯데에서 만든 목캔디가 의자옆에 항상 놓여있다. 시거를 즐기던
그가 담배를 끊은뒤 생긴 버릇이다. 스무살도 채안돼 단신 일본에 건
너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부로 한국과 일본에 대기업군을 구축한 신 회
장을 최청림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리가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일흔
이 넘는 연세에도 아직 젊어 보이십니다. 건강유지에 특별한 비결이라고
있습니까. "별것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원에서 풀을 뽑고
골프클럽으로 휘두르는 연습을 하는게 전부입니다. 매일 40분정도는 빠
지지 않고 합니다. 매주 한번씩 골프장에 나가고 . 골프는 한때 핸디
12까지 됐었는데 요즘은 핸디 18정도입니다." -건강관리를 위해
음식에 조심하시는 것은 없습니까. "한국요리나 일본요리나 다 잘먹
습니다. 술은 옛날에는 많이 했는데 요즘은 상당히 줄였습니다. 담배도
5년전까지는 하루에 시거를 열두개비 정도 피울만큼 즐겼는데 딱 끊어
버렸습니다." 공장 폭격당해 시련 -회장께서 일본에 처음 가셨을
때가 언제입니까. 밀항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간 것은 사실이지만 밀항은 아닙니다. 시골(경남 울산)에 살다가
하도 가난해서 일본에 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반대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고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가출인 셈이
죠. 수중에는 83원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 시골 면서기 두달치 월급
입니다." -형제가 열명이나 되는데다 장남이라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정말 살기 어려웠습니다. 소화 16년이니까 . 열아홉에 무조건
일본으로 건너가 국민학교때 알던 친구의 하숙방에 얹혀 반년정도 함께
살았습니다. 나중에는 한평반짜리 방을 얻어 독립했지요. 와세다중학교
4학년에 편입해 와세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우유배달이나 신문배달,공장
에서 파트타임 잡일까지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공고를 지망한 것은 태평
양전쟁이 한창일때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사업은 언
제 시작하셨습니까. 미군들이 껌을 씹는 것을 보고 저거다 하는 아이
디어를 얻어 껌 사업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첫 사업은
고등공업학교 재학중에 손댔습니다. 전쟁중이라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쉽
지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평소 잘 알게된 일본인 노인이 사업해볼 생각
이 없느냐 고 권해 시작했습니다. 예순이 넘은 그 노인은 나를 아주
신임해 자기돈 6만엔을 대주며 공장을 차려줬습니다. 당시 회사원 월급
이라고 해야 80엔이나 1백엔정도에 불과해 그 노인으로서는 전재산과
다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공장이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1년반쯤
지나 미군기들의 공습으로 공장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난감하더군
요. 노인은 이것도 운명이다. 너도 살 길을 찾아라. 나는 시골에
가 살겠다"고 위로했지만 어떻게 하든 돈을 벌어 보답해야 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 노인이 결국은 회장께서 사업을 일으켜 성공하게 만
든 평생의 은인인 셈이군요. "하나미스(화광)씨라고 하는데 일 평생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벌써 20여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하다가 화장품사업을 벌여 1년반만에 6만
엔을 모두 갚고 이자로 집을 한채 사드렸습니다. 사업을 한다기보다는
어떻게든 돈을 빨리 벌어 노인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뿐 이었습니다."
일 땅값올라 재산늘어 - 롯데 라는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
르테르의 슬픔 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맞습니까.
"종전후 롯데 라는 주인공이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을 보고 화장품 상표로 처음 사용했습니다. 당초 일본에 올때는 공부를
많이해 작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 남들보다 독서를 열심히 했
습니다. 그때만해도 사업은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그렇지만 이제 한국과 일본에 대기업군을 일으키고 세계적인 거부
로 손꼽히지 않습니까. 미 포브스지는 얼마전 회장님을 세계 3위의 거
부로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계십니까. "옛날
부터 일본에 부동산을 많이 갖고있는데 땅값이 올라 그런 것이지 무언가
과대평가한듯 합니다. 아직 계산해본 적도 없고 세계에는 우리보다 몇
배의 부자들도 있습니다." -회장께서는 한국과 일본에 모두 사업기반
을 갖고 한달씩 교대로 주재하고 계십니다. 양쪽에서 일하며 느끼시는
차이는 어떻습니까. "한국에 3주,일본에 5주 정도씩 머물며 일을
보고 있습니다. 양쪽에 있다보니 차이를 많이 느낍니다. 첫째,일본에서
는 사업가들이 정치나 기타 문제에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
지만 한국에서는 신경쓸 분야가 너무 많습니다. 은행이다 정치다 해서
사업의 절반정도는 사업이외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또 일본에서는 사업
이 잘되거나 못되거나 모두 자기 책임입니다. 한국처럼 정부에서 기업을
특별히 도와주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대신 정부의 간섭도 없습니다
.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 일본입니다. 사업에 책임을 지다
보니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경제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 일본과 비교해 한국겨에와 기업들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롯데는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한국에서는 인건비의 비중이 높은 반면,생산성은 크게 떨어집
니다. 같은 기계를 쓰더라도 한국의 생산성은 일본의 절반정도에 불과합
니다." -한국기업들은 외부의 규제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
등 외부에 대한 로비도 해야하고,그러다보니 비용부담도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 정치자금 등의 비용은 아주 적어 문제가 안될
정도입니다. 연간 4천만~5천만엔정도가 고작이고 선거때도 1억엔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는 명절때 등 헌금을 하면서도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사회당이나
공산당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자민당에 기부하는 것입니다." 한국 생
산성 일 절반 -일본의 공무원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뇌물을 받지않는
것같으면서도 명절때면 선물보따리가 사무실에 놓여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혀 없다고 보아도 됩니다. 관례적으로 추석이나 연말에
친밀한 공무원들에게 선물을 하지만 위스키 한두병이 고작입니다. 값으
로 따지면 오륙천엔정도이고 많아야 1만엔을 넘지않습니다. 그 이상으로
공무원에게 주는 것도 없고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떤
관직에 누가 앉거나 되는 것은 되고,안되는 것은 안됩니다. 누가 부
탁한다고 해서 안되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
공무원들은 되는 것도 없고,안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있습
니다. 회장께서는 일본관리들에게 돈을 준 적이 없습니까? "일본 관
리들은 돈을 주면 모욕으로 생각합니다. 얼마전 동경에서 차를 몰다 속
도위반으로 붙잡힌 한 한국인이 교통순경에게 5천엔을 집어줬다가 혼쭐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순경으로서는 처음 당한 일이지요."
일본송금 한푼 없어 -일본 공무원들도 자리를 떠날때 전별금을 받지
않습니까? "전별금이 대체로 2백만엔 정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디
. 그래도 회사별로는 5만엔을 넘지않습니다. 또 공무원을 그만두면 기
업체에서 고문으로 몇년간 대우하며 생활비를 보조해주는 일은 있습니다.
일본기업마다 이런 퇴직 공무원들이 두세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기
본적으로 일본의 공무원들은 재직중에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20여년전쯤 일본가정에서 거의 세탁기를 쓰고 있을 때입니다. 집
사람이 알고지내던 국세청장 집을 찾아가니 그 부인이 목욕탕에서 빨리
판으로 세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세탁
기를 하나 보내줬더닌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35년간 공무원생활을
하며 이런 것을 받은 적이 없다 며 다시 가져가라는 겁니다." -회
장께서는 일본 정계의 거물들과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시-후쿠다-오히라-다케시타-나카소네 등 전직 수상들로부터 현 미야
자와수상에 이르기까지 역대 수상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아이들 결혼식에
도 직접 참석해줄 정도 입니다. 이들 일본수상들의 공통점은 대개 물러
나거나 죽은 뒤에 이렇다할 재산이 없다는 점입니다." -김영삼대통령
과는 언제부터 교분을 갖고 계십니까.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처음 만
나 서로 알고 지낸지 20여년 됩니다.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후 잠시
만나 인사한 적은 있지만 오래 만나지 못했습니다. 워낙 바쁘시고 해
서 ." -롯데물산의 김세웅사장이 김 대통령과 사돈간이지 않습니까?
"김 사장과의 관계는 처음에 전혀 몰랐습니다. 당시 경주현사장이
삼성그룹으로 옮겨가면서 공석이 돼 소개를 받고 만났을 뿐입니다. 김
대통령과의 관계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는 얼마나
투자하셨습니까. "일본에서 가져온 돈이 27억달러쯤 될겁니다. 6
0년대초 박 대통령을 처음만나 한국에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
니다. 처음에는 정유업에 손대려 했는데 다른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80년대초에는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석유파동까지 겹쳐 당시 전두환대통령
이 6억~7억달러쯤 투자해달라 는 부탁을 받고 투자를 늘렸습니다.
그동안 일본으로 과실송금한 돈은 1센트도 없습니다. 돈이 남으면 모
두 재투자했습니다." -잠실 롯데월드의 투자계획은 떻습니까. 6공정
부의 5.8 부동산조치로 제2월드 부지가 비업무용으로 지정돼 당초 계
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던데요. "솔직히 제2월드 부지는 비업무용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 땅을 살때도 서울시의 부탁으로 이뤄졌고,재
무부나 외무부의 허가를 받아 건설자금도 일본에서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기존의 롯데월드와 합쳐 세계적인 명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비업무용으로 묶으니 정책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공사
가 지연된 것도 정부가 설계계획서를 자꾸 수정해 그런 겁니다. 한 고
위당국자는 억울하더라도 국민들이 주목하니 양보하라 고 억지를 부렸습
니다. 지금 소송이 걸려 있는데 법에 따라 당당히 재판을 받을 생각입
니다." 5.8조치는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고 일부 재벌기업들이
여기에 가세해 취해진 것입니다. 기업들이 사업경영보다 부동산투기에 관
심을 기울인다면 문제아닙니까. "부동산투기를 억제하려면 부동산을 사
고 팔때 양도차익의 1백%를 징수하는 세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합법적
인 절차에 따른다면 몰라도 개인 토지를 강제로 사고 팔라는 것은 문제
입니다. 동경에서도 현재 롯데월드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동경도에서는
주택지를 상업지로 전환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는 정반대지요." -정부가 추진하는 신경제계획의 취지는 규제나 간섭
을 풀고 민간자율에 따라 경쟁을 유도한다는데 맞춰지고 있습니다. 앞으
로의 경제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는게 바람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한국경제가 국제경쟁력을 하루빨리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경제활성화가 시급합니다. 러시아나 중국이 한국을 상대하는 이유도
경제력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여신관리 등을 자유화해 기업활동을 자유
롭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행도 책임경영을 하도록하면 부실기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과소비 문제만 해도 너무 강조할 필요가 없습
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김치만 먹다가 고기도 먹고,소수 마시던 사람이
맥주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가 발전한 표시입니다. 국민
들의 불안감을 없애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좋은 정치이고,법과 질
서를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동경집은 천평정도 -동경
과 서울에 모두 집을 갖고 계신가요. "동경집은 1천평정도 됩니다.
한국의 방배동집은 2백평 정도입니다. 자동차도 한때 일본에서 롤스
로이스 밴츠 링컨과 스포츠카도 갖고 있었지만 모두 처분하고 링컨을 타
고 있습니다. 한때는 스포츠카를 시속 2백㎞까지 몰며 스피드를 즐기기
도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은 직접 운전을 합니다. 서울에서는 벤츠 6
00을 타는데,그것도 정부가 무역흑자로 외국차를 사라고 해서 구입한
것입니다." -한국기업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은. "일본과의 기술협력
만 해도 무조건 달라고 조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한일 경제협력은 과
거사나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본
기업들이 스스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중요
합니다."<대담 최청림 편집국장 대리><정리=박세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