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47년 만에 달 탐사에 나섰다.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는 11일 오전 8시 10분(한국시각) 모스크바 동쪽 5500㎞에 있는 러시아 극동 우주 센터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소유스 2.1b’ 로켓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 소유즈 로켓에는 러시아의 달 탐사선인 ‘루나-25호’가 실려 있다.

◇루나-24호 이후 47년 만의 달 탐사선

루나-25호는 러시아가 47년 만에 발사한 달 탐사선이다. 마지막 달 탐사선인 루나-24호는 1976년이었다. 당시 루나-24호는 170g 정도의 달 샘플을 지구로 성공적으로 전달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달 탐사 계획은 중단됐다. 구 소련의 몰락과 함께 여러 우주 탐사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러시아의 달 탐사선 루나-25호가 11일 오전 소유즈 로켓에 실려 발사되고 있다./연합뉴스

거의 반 세기 만에 달로 향하는 러시아의 새 달 탐사선은 구 소련 시절의 명성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루나’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우주 활동을 추적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아나톨리 자크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새 달 탐사선은 구 소련의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 ‘루나-25′라고 부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달 착륙선의 구조 역시 소련이 1970년대 만들었던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루나-25호는 달까지 직선 주로를 달린다. 최근에는 달 탐사선의 연료를 절약할 목적으로 지구에서 달까지 직선 경로보다는 우회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발사된 한국의 첫 달 탐사선인 ‘다누리’의 경우 지구에서 태양 방향으로 150만㎞ 떨어진 지점에 중력이 평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L1 포인트를 이용했다.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연료를 아끼는 대신 지구에서 달까지 비행에 13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가 지난달 14일 발사한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 역시 발사 이후 지구 궤도를 몇 차례 돌면서 추진력을 얻은 뒤에 달로 향했다. 이 때문에 20여일이 지난 이달 5일에야 달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반면 루나-25호는 발사 5일 뒤에 달 궤도에 도착한다. 지구에서 달로 향하는 직선 경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후 루나-25호는 약 5~7일 정도 달 상공에서 천천히 고도를 낮추는 타원형 궤도를 돌게 된다. 최종 착륙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달 하순이 유력하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우주연구소의 수석 과학자 나탄 아이즈몬트는 인터뷰에서 “가장 빠른 착륙 예정일은 8월 20일이지만 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달에서 벌어지는 남극 경쟁… 21세기 승자는 누구

러시아의 달 탐사선이 주목을 받는 건 달의 남극에 도착하는 첫 탐사선의 영광을 차지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루나-25호의 착륙 예정지는 달의 남극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는 보구슬라프스키 크레이터 근처다.

앞서 인도가 보낸 찬드라얀 3호 역시 달의 남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찬드라얀 3호는 발사가 빨라지만 달까지의 이동 경로가 다른 탓에 최종적인 달 착륙 일정은 루나-25호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인도우주연구기구는 찬드라얀 3호의 달 착륙 일정을 23일 정도로 보고 있다. 이 일정대로라면 루나-25호가 하루이틀 먼저 착륙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100여 년 전에 지구에서 벌어진 노르웨이 아문센과 영국 스콧의 남극점 경쟁이 달에서 재현되는 모양새다.

러시아 연방우주공사 연구자들이 지난 1일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달 탐사선 루나-25호에 대한 점검을 하고 있다./로스코스모스

달의 남극은 아직까지 탐사선이 직접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인도우주연구기구의 소마나트 소장은 “달의 남극은 다른 지역보다 어둡고 춥다”며 “지형도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탐사가 쉽지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달의 남극은 크레이터 지형의 경우 기온이 영하 200도 보다도 낮다.

그럼에도 여러 국가가 달의 남극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앞서 인도의 찬드라얀 1호가 달 표면 분광 사진 촬영으로 달의 남극 지방에 다량의 물과 얼음층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다. 물은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도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물이 있다면 우주선의 연료로 쓸 수 있는 수소를 만들 수도 있고, 사람이나 동·식물이 호흡하는데 필요한 산소도 만들 수 있다. 달에 우주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를 세운다면 남극 지방이 최선이라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우주연구소 아이즈몬트 박사는 “남극이 달 연구 프로그램을 진전시킬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나-25호는 달 착륙에 성공하면 최소 1년 동안 달 탐사에 나설 계획이다. 달의 남극 지방에서 토양을 채취하고 물과 얼음을 흔적을 찾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루나-25호에는 이를 위한 토양 흡입 장치, 원격으로 물과 얼음을 찾는 중성자·감마 검출기, 적외선 분광기 등 다양한 관측 장비가 실려 있다.

◇달 탐사 경쟁 본격 시작… 미국은 ‘루나-25호’ 평가절하

러시아는 루나-25호를 시작으로 달 탐사 프로젝트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루나-26호는 달 궤도를 돌면서 두 차례 착륙을 시도한다는 계획이고, 루나-27호는 달에 시추 장비를 운반하는 게 목표다. 루나-28호는 달의 남극 지방에서 채취한 레골리스(Regolith)를 지구로 운반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레골리스는 달 표면을 덮고 있는 먼지나 흙, 돌조각 같은 물질 층을 말한다.

달 남극 근처 마빈 충돌구의 전경을 다누리의 섀도캠으로 찍은 사진. 왼쪽에 흰 부분은 햇빛을 직접 받은 곳이다./NASA·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렇게 러시아가 달 탐사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과거의 경쟁국인 미국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미 우주항공국(NASA)의 빌 넬슨 국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루나-25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발사를 축하한다”면서도 “러시아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기간 안에 우주인을 달에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 경쟁은 우리와 중국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러시아의 달 탐사에 대해 일축했다.

넬슨 국장의 말대로 달 탐사 경쟁에서 미국은 한 발 앞서 있다. 미국의 ‘아르테미스’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는 2025년에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는 걸 목표로 한다. 이미 작년 12월 아르테미스 1호가 마네킹을 태운 채 달에 갔다오는 연습에 성공했고, 내년에는 아르테미스 2호가 실제 우주인을 태우고 달 궤도를 다녀올 예정이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미국 외에도 한국, 일본, 인도, 브라질 등 2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2019년에 창어 3호를 달에 보냈고, 내년에는 창어 6호와 7호를 잇따라 달에 보내 달의 남극 지방을 탐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