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를 호흡 냄새로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연구진은 두 마리의 개를 훈련시켜 90% 확률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냄새로 구분해냈다./픽사베이

개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환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호흡으로 배출하는 냄새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비롯해 각종 감염병과 성인병에 감염된 사실을 냄새로 알아낸다는 연구는 그간 있었지만 PTSD 환자를 구분하는 사실이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캐나다 댈하우지대 연구진은 28일 “개는 후각을 이용해 호흡으로 배출하는 물질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를 구별해낼 수 있다”고 밝혔다.

PTSD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질병이다. 주로 군인, 소방관, 경찰관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범죄 피해를 당하거나 큰 사고를 당했던 사람들도 같은 증상을 겪는다.

현대인의 정신건강이 나빠지면서 국내에서도 PTSD 발병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PTSD로 치료 받은 환자는 2015년 7268명에서 2019년 1만570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PTSD 진단은 전문의와의 문진이나 자가진단만으로 할 수 있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우려도 나온다.

캐나다 연구진은 기분과 감정에 따라 호흡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착안해 후각을 이용해 PTSD를 진단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뛰어난 후각을 가진 개가 인간의 호흡에서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구분해 PTSD 환자를 감별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27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호흡으로 배출하는 화학물질을 수집했다. 이들 중 14명은 PTSD 환자였으며, 나머지 13명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서 호흡 샘플을 수집했다. PTSD 환자는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경험을 다시 떠올리면서 호흡 샘플을 채취했다.

이렇게 수집한 호흡 샘플은 캘리와 아이비라는 이름의 개 두 마리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이들은 25마리의 개 중 냄새 구분 훈련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 이번 실험에 참가하게 됐다. 사전 훈련에서 두 마리의 개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을 때 채취한 호흡 샘플을 90%의 정확도로 구분해내는 능력을 선보였다.

캘리와 아이비는 이번 실험에서 각각 81%, 74%의 정확도로 PTSD 환자의 호흡 샘플을 구분해내는 데 성공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지만, 호흡 냄새로 PTSD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로라 키로자 달하우지대 연구원은 “두 마리의 개 모두 높은 정확도를 보였으나, 각각 다른 감정에 특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아이비가 불안에 관련한 물질에 반응했다면 캘리는 수치심에 관계된 물질에 집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후각을 이용해 질병을 진단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자코(electronic nose)’라고 불리는 기술은 이미 간·신장 질환, 암, 뇌 질환의 진단에 활용하고 있다. 전자코는 냄새를 내는 휘발성 물질을 구분하는 전자 소자를 이용해 질병을 찾는 기술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단 정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관련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지난 11일 시장조사 기업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전자코 시장은 4700만달러(약 631억원)에서 2031년 1억947만달러(약 1471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후속 실험을 통해 PTSD 환자의 감정에 따른 호르몬 변화를 냄새로 감지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PTSD를 진단할 수 있는 전자코 개발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키로자 연구원은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호흡에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첨단 알레르기학(Frontiers in Allergy)’에 실렸다.

참고 자료

Frontiers in Allergy(2024), DOI: https://doi.org/10.3389/falgy.2024.135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