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지구 마그마 바다에서 형성된 환원성 대기의 상상도./연세대

지금의 달을 만든 약 45억년 전의 대충돌은 지구를 일시에 마그마 바다의 상태로 만들며 기존의 대기를 완전히 변화시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이 충돌 과정에서 자연에서 유기물의 합성에 필수인 대기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용재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21일 초기 지구에서 일어난 대충돌 과정에서 마그마 바다에 포함된 물과 이산화탄소가 충돌체 핵의 주성분인 철과 반응해 유기물 합성에 필수적인 환원성 대기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현재의 지구 대기는 과거 맨틀 상부에서 배출된 가스 성분의 영향을 받아 시생대 초기인 약 40억 년 전부터 산화된 상태로 존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유기물 합성에 필요한 환원성 대기의 존재는 초기 지구 시기인 약 40억 년 이전 시점에서 형성 과정을 찾아봐야 한다.

과학계는 이미 달 형성 대충돌 이후 지구의 진화 양상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구와 충돌한 미행성체의 철로 이루어진 핵이 지구에 유입되면서 마그마 바다의 물질과 상당량 반응했을 것으로 추측된 바 있다.

이용재 교수 연구진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X-선원으로 알려진 ‘X-선 자유전자레이저’를 이용해 철에 수 메가줄(MJ·에너지 또는 일의 단위)의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가하는 새로운 실험 기법을 이용해 대충돌에 의한 마그마 바다 환경을 모사하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달 형성 대충돌에 의한 미행성체의 핵과 마그마 바다의 물, 이산화탄소 등 휘발성 물질 간의 반응을 실험적으로 모사하기 위해 소형 고압 발생 장치인 다이아몬드 앤빌셀(Diamond-anvil Cell)을 이용했다. 철과 물 그리고 철과 이산화탄소의 혼합 시료에 대기압의 약 5만~10만 배에 해당하는 압력을 가한 뒤, 4세대 선형가속기에서 생성된 짧은 펄스 형태의 X-선 자유전자레이저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초고온-초고압 환경을 만들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최진혁 연세대 연구원이 X-선 자유전자레이저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연세대

연속적인 X-선을 통해 반응과 그 과정을 관찰한 결과, 물을 구성하는 수소가 일시적으로 철의 구조 내부로 포획됐다가 온도-압력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수소 기체 형태로 방출되며, 산화철(FeO)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때 초기 압력이 마그마 바다의 약 300km 깊이에 해당하는 10GPa(기가파스칼) 이상인 경우, 철 구조 내에 포획된 수소는 온도-압력 복원 이후에도 철수화물 형태로 유지됨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철과 이산화탄소 사이의 반응에서도 이산화탄소를 구성하는 산소와 철이 결합해 물과의 반응에서와 마찬가지로 산화철이 생성되며, 일산화탄소(CO) 기체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반응 양상은 대충돌에 의해 방출된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환원성 대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철은 산화철의 형태로 지구 맨틀 성분을 구성하며, 더 깊은 곳에서 안정적으로 만들어진 철수화물은 지구의 중심으로 이동해 가벼운 성분이 포함된 핵을 형성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를 이끈 이용재 연세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충돌 환경에서 일어난 철과 휘발성 물질 간의 반응을 실험적으로 처음 관찰한 결과로, 초기지구에서 생명체 탄생의 열쇠인 환원성 대기의 형성 과정을 실험실 환경에서 직접 구현한 것”이라며 “X-선 자유전자레이저를 이용한 대충돌 모사 실험을 시작으로 향후 동적 극한 환경 연구를 통해 지구와 행성 진화의 통시적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포항가속기연구소 4세대 선형가속기(PAL-XFEL) 연구진과 독일 페트라(PETRA) III 입가속기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이달 15일(현지 시각) 게재됐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3), DOI: http://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i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