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6·25전쟁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이 영현을 봉송하고 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고, 이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유가족을 찾아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13만7899명.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한 6·25전쟁에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한 국군의 숫자다. 지금의 한국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들이지만, 이들의 이름 대부분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잊혀진 호국영령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매년 전국에서 이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자 검사로 유가족을 찾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감식단은 지난해까지 국군 1만1313명의 유해를 발굴했다. 전체 전사자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올해도 전국 23개 지역에서 아직 발견 못 한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작업이 한창이다.

전사자들의 신원 파악은 유해 발굴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유품과 기록·증언·정황을 토대로 적군인지 국군인지를 확인하고 유골의 형태적인 특징으로 성별, 나이, 사망 원인, 인종을 분석하는 유해 감식이 이뤄진다. 다음으로는 유골에서 DNA를 추출하는 유전자 분석으로 이어진다. 유전자 분석은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다. 전사자들의 가족과 이름을 찾기 위해 최근 다양한 유전자 분석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지난 2월 22일 켈리 맥케이그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국장이 22일 서울 동작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둘러보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최근 단일염기다형성 분석을 도입해 그간 분석이 어려웠던 유해 검사가 가능해졌다. /뉴스1

◇신기술 도입으로 13년 전 발굴 유해 이름 찾아

박정현 감식단 유전자분석과장은 “전사자 발굴·신원 조사 사업을 큰 규모로 진행하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이 대표적이지만 미국은 참전 용사들의 치과 치료기록, 흉부 X선 영상 같은 의료 기록이 잘 남아 있다”며 “반면 한국은 6·25전쟁 전에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만큼 우리에게는 유전자 검사가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전사자들의 신원은 DNA에 2~7개의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부분인 ‘짧은연쇄반복(STR)’을 이용해 분석한다. 이 영역은 유전적으로 특별한 기능은 하지 않지만 변이가 많이 생겨 사람마다 반복 횟수가 다르다. 이 특징을 이용하면 개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가령 전사자에서 특정 짧은연쇄반복이 3번 반복되고 유가족에서도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면 이들이 가족 관계일 확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지역의 짧은연쇄반복을 함께 검사하면 정확도는 더욱 높아진다.

감식단은 상염색체에 있는 ‘A-STR’ 23개와 Y염색체에 있는 ‘Y-STAR’ 22개를 사용해 전사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미토콘드리아가 가진 DNA의 변이를 비교하는 방식을 더해 정확도를 높인다.

부모에서 절반씩 물려받는 A-STR은 세대가 지날수록 일정 비율로 희석된다. 이 특징을 이용하면 전사자와 유가족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아낼 수 있다. 전사자와 유가족이 몇 촌 관계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Y-STR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다. 부모 중 한 명의 계통만 확인할 수 있지만 세대에 따라 희석되지 않는 만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이 세 가지 지표를 종합하면 전사자와 유가족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박 과장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유전자를 이용한 신원 확인 방법의 국제 표준”이라며 “다만 6·25 전쟁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고, 유해의 손상 정도가 심한 만큼 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식단은 지난해 3월 새로운 유전자 분석 방법으로 3명의 전사자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다. 고(故) 홍인섭 하사, 박기성 하사, 김재규 이등중사는 유해가 각각 2009년, 2015년, 2017년 발굴됐지만, DNA 상태가 좋지 않아 신원과 유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감식단이 새롭게 도입한 유전자 분석 기법 덕분이었다. 짧은연쇄반복과 함께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분석하는 기술로, 유전자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DNA 지역이 최대 수만개에 이른다. 단일염기다형성은 DNA 염기 하나가 다른 염기로 바뀌는 변이로 짧은연쇄반복보다 많은 수를 분석해 정확도를 기존보다 크게 높일 수 있다.

감식단은 단일염기다형성 분석을 전사자 신원 확인에 활용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범 도입에 나섰다. 최종 목표는 단일염기다형성 8000개를 이용해 전사자 신원 조사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장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단일염기다형성 분석을 도입하면서 그간 시료의 상태가 좋지 않아 신원 확인이 어려웠던 전사자들의 신원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과장은 “지난해에 시범 운영으로 단일염기다형성 300개 정도를 활용했는데, 그간 유가족 확인에 어려움을 겪던 사례에 적용해 성공적으로 유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 전사자 신원 확인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고(故) 오문교 이등중사의 유해. 6·25전쟁 전사자의 유해는 오랜 시간 산에 묻혀 유전자 감식이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신 유전자 분석 기술의 도입이 필요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 세대 멀어지면 찾기 어려워져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전사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사업은 흔히 ‘시간 싸움’으로 불린다. 유해가 방치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전자를 채취하기는 어려워지고, 세월이 지나면서 직계 유가족도 숨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휴전 협정으로 6·25 전쟁을 멈춘 1953년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 전사자 유가족 대부분은 2세대가 지났다. 유가족의 세대가 멀어질수록 유전자 분석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박 과장은 “그동안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기술적 보완을 거쳐 먼 친족 관계도 분석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개선해 왔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분석에 쓰이는 짧은연쇄반복의 숫자를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총 45개의 짧은연쇄반복을 활용하고 있지만, 사업 초기에는 30개에 불과했다. 전사자와 유가족의 유전적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더 많은 지표를 활용해야 한다.

일반적인 유전자 분석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같은 기술로 범행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는 법유전학에서는 1~2주면 유전자 분석을 끝낼 수 있다. 반면 전사자의 유전자를 분석할 때는 1달 이상이 걸린다. 이마저도 DNA 상태가 나쁘면 재검사를 해야 해 시간을 기약하기도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1년에 신원이 밝혀지는 전사자의 유해는 열명 남짓에 불과하다.

박 과장은 “전사자들의 유해는 오랜 시간 산에 묻혀 부패하거나 오염돼 DNA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전사자를 다루는 분야는 유전자 분석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로 숙련된 인력과 전문 기술을 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분석만으로 전사자들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감식단이 유가족들의 유전자 등록을 독려하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기준 유전자 등록을 마친 유가족은 전사자의 절반 수준인 6만6000여명이다. 수개월에 걸쳐 전사자의 유전자를 분석하더라도 유가족의 정보가 등록돼 있지 않다면 여전히 이름 없는 전사로 남는다.

박 과장은 “최근 수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가족의 유전자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방역 상황이 완화된 만큼 올해부터 다시 집중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호국영령의 이름을 찾고 유가족이 명예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