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에 조건부 동의를 표했다. 설악산 오색지구와 끝청 부근을 잇는 3.3km 길이의 케이블카가 설치될 예정이다. /조선DB

환경부가 27일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 협의에서 조건부로 사업을 허가한 것과 관련해 환경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환경부는 현지 조사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케이블카 시설 사이로 동물이 다닐 수 있도록 조정하는 등 조건을 달았다. 환경단체들은 “생태계를 지켜야 할 환경부가 역할을 잊었다”며 “설악산 생태계를 사실상 포기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달초 국내 환경영향평가 전문 기관 5곳은 케이블카 설치를 사실상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환경영향평가 검토 의견을 밝혔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케이블카가 멸종위기 1급 산양 서식지를 교란하고 상부 정류장 설치로 아고산대 지형이 크게 훼손되는 데 견줘 사업자가 제시한 보전 대책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기 어렵다”며 설치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국립환경과학원도 상부 정류장을 산양 서식지 핵심구역을 포함하지 않는 곳으로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해외에선 케이블카 설치로 산양 등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들이 여러 건 보고돼 있다. 미하우 치아흐 폴란드 산림생물다양성연구소 연구원과 루카스 펭사 폴란드 타트라 국립공원 연구원은 2014년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 보전지역인 타트라 산맥에서 케이블카 확대로 알프스 산양의 일종인 샤무아 무리가 이동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오릭스(Oryx)’에 공개했다.

강원 양양군이 추진 중인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폴란드 케이블카 확대로 ‘산양 무리 크기 줄고 서식지 1km 이동’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타트라 산맥의 케이블카 노선은 알프스 산양이 주로 서식하는 1959m 높이의 카스프로비 비에르히(Kasprowy Wierch)봉까지 이어진다. 이 케이블카는 1936년 개통 후 첫해에만 16만5000명의 사람들이 이용했고 2021년엔 약 50만 명까지 늘어났다. 2007년 현대화 공사로 케이블카 크기가 두 배 늘어나며 산 정상으로 가는 관광객이 연평균 32만13125명에서 47만 9915명으로 약 50% 늘었다.

연구진은 1999~2001년과 2008~2010년에 걸쳐 두 차례 알프스 산양 개체 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케이블카 확대로 인해 알프스 산양의 무리 크기가 평균 5.3마리에서 3.9마리로 감소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산양 무리는 케이블카 시설을 피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프스 산양과 케이블카 사이의 거리는 평균 693m에서 1664m, 케이블카 시설과의 거리도 467.8m에서 1415m로 약 1km 정도 멀어진 반면 등산로와 알프스 산양의 거리는 평균 144.3m에서 190.4m로 약 50m 멀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상대적으로 등산로보다 케이블카와 관련시설에서 더 멀어진 경향이 뚜렷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서식지 변화는 전 세계 생물 다양성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으로 멸종 가능성을 높인다”며 “고산 생태계에서의 인간 활동은 야생 동물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방문객 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에서도 최근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탄자니아 정부는 킬리만자로산 등산객을 2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케이블카 프로젝트를 내놨다. 지상에서 해발 5895m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1안과 케이블카를 3800m까지 타고 올라간 뒤 그 이상은 걸어올라가는 2안이 추진되고 있다. 평균 정상까지 5~8일 걸리던 등반시간은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수 분내 올라갈 수 있어 현재 매년 5만명의 등반가 중 3분의 1이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을 줄일 것으로 탄자니아 정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또 케이블카 덕분에 15세 미만 어린이와 장애인, 운동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정상에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원도도 이번 케이블카 설치 근거로1982년부터 관광객이 늘고 노인이나 장애인이 오가기 쉽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들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여행협회와 탄자니아여행사협회 등 단체들은 케이블카가 자연과 풍경의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관광에 반하고 대규모 관광을 장려할 경우 킬리만자로의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정부의 자연 보전 정책에 위배된다며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케이블카가 가파르고 경치가 좋은 위스키 루트라는 곳에 설치될 경우 대체 불가능한 철새도래지로 손꼽히는 이 지역에서 새들의 이동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다며 관련 연구 용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중국선 케이블카 세계 자연유산 파괴 논란

1983년 중국 산둥성의 타이산에 설치된 케이블카 시스템도 환경 파괴와 자연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1만9000㎡의 봉우리 가운데 3분의 1이 케이블카 설치 과정에서 폭파됐고 케이블카 선로가 이어지는 기둥을 설치하기 위해 수백 그루 나무가 벌채됐다는 것이다. 또 그보다 작은 각종 식물들도 파괴됐다는 게 중국 학계 주장이다.

시닝가오 베이징대 교수는 “세계 자연 문화 유산 보존의 목표는 미래 세대를 위해 유물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에 있다”며 “이익을 추구하는 개발 프로젝트는 세계 유산의 공익적 역할과 정신적, 문화적 기능에 모순된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 고지대와 도심 연구에서 케이블카나 로프웨이가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결과도 있다. 로프웨이가 전기 에너지로 운행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이 적고 다른 운송수단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것이다.

튀르키예 앙카라대 연구팀은 2004년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남동부와 동부의 고지대에서 늘어나는 관광객이 환경에 미치는 결과를 분석한 결과 고지대에 대한 접근은 육로보다 철도나 케이블과 같은 대체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환경에 유리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차량이 운행하는 도로를 뚫는 것과 비교한 연구라는 점에서 도보로 등반하는 설악산의 사례와는 다르다.

다만 케이블카를 교통 수단으로 이용해야 하는 고산 지대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환경 평가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언 바스케스 로우 페루 리마가톨릭대 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복잡한 안데스 지형 조건에서 도로 교통 대신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면서도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생물다양성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초기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환경부가 결정을 바꾸면서 환경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 반발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Oryx, DOI: https://doi.org/10.1017/S0030605313001269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DOI: https://doi.org/10.1016/j.scitotenv.2020.137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