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철새와 닭, 오리를 넘어 여우와 곰, 밍크 같은 포유류까지 퍼지고 있다. 2021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포유류 200마리가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Pixabay

철새나 닭, 오리가 걸리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종간(種間) 장벽을 넘어 포유류까지 번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 사례가 늘어나면 포유류끼리 전염되는 형태로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인간도 위험해질 수 있어 전 세계 방역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시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와 일어났다.

영국 BBC방송은 사상 최대 규모의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2021년 10월 이래 전 세계에서 조류 4200만마리가 감염됐으며, 수달과 여우, 곰 같은 포유류에게도 퍼지고 있다고 지난 2일 전했다. 포유류 감염 사례는 모두 119건, 감염 동물 수는 최소 200마리인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 보건 당국은 현재로선 공중보건 위험이 매우 낮지만,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포유류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인간에 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조류 넘어 포유류까지 감염시켜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 종류로 분류한다. 헤마글루티닌은 숙주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가 되며, 뉴라미니디아제는 증식 후 숙주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한다. 닭이나 오리, 철새에 조류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고병원성 H5N1형은 HA 5형, NA 1형이라는 뜻이다.

H5N1 조류인플루엔자는 1996년 중국의 거위 농장에서 처음 확인됐다. 2005년 철새까지 감염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2020년 발생한 2.3.4.4b 변이는 유럽과 북미의 가금류 산업에 타격을 주고 지난해 가을 중남미까지 퍼졌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옛 국제수역사무국)는 BBC방송에 2021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전 세계에서 가금류와 야생 조류 약 4200만마리가 고병원성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감염 사례는 9873건이었다. 이 중 가금류 1500만마리가 병으로 죽었으며, 1억9300만마리는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살처분됐다.

그래픽=손민균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기도 위쪽에서 세포 표면의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한다. 포유류는 이 수용체가 거의 없어 걸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포유류에 잘 감염되도록 바이러스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여우와 고양이, 흰족제비, 물개, 돌고래, 미국너구리가 잇따라 감염됐다.

지난달 미국 몬태나 방역 당국은 병에 걸려 안락사시킨 회색곰 3마리에서도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농장에서 죽은 밍크에서도 역시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나왔다. 영국 동식물보건국(APHA)은 포유류 66마리를 검사했더니 수달과 여우 9마리가 고병원성 H5N1형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인간에게 퍼지면 치명적 사태 우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난 2021년 10월 이래 5명이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이 중 중국인 1명이 사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21국에서 868명이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457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53%에 이른다.

영국 동식물보건국은 최근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는 아직 새에게만 치명적이라고 밝혔다. 포유류 감염은 야생동물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죽은 조류를 먹고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 감염 사례도 모두 병에 걸린 조류와 접촉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동식물보건국(APHA)의 과학책임자인 이안 브라운 교수(사진)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조류를 넘어 인간까지 퍼질 위험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영 APHA

하지만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으면 포유류나 인간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밍크처럼 농장에서 사육하는 동물이라면 집단 감염 사태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우려된다. 감염 동물이 늘면 포유류 사이에 퍼질 수 있는 돌연변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WHO는 지난달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아직 인간 간 전염되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계속 진화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감시망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WHO의 글로벌 인플루엔자 프로그램 책임자인 웬칭 장 박사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을 위험이 매우 우려된다”며 “동물과 인간 감염 사례에서 보듯 몇 년 사이 그 위험이 계속 높아졌다”고 밝혔다.

영국 동식물보건국의 과학책임자인 이안 브라운 교수도 BBC방송에 “조류인플루엔자가 코로나19 같이 대유행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세계적인 전파가 우려되므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표면의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디아제 단백질 정류로 분류한다. 주로 새에 감염되는 H5N1 바이러스가 포유류로 퍼지면 인간 사이에 감염이 되는 새로운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