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진이 유연(스트레처블) 소재 위에 집적된 신축성 반도체 소자 어레이를 잡아당기는 모습/ ETRI 제공

국내 연구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유연 디스플레이’ 제작에 쓸 수 있는 신축성 반도체 소자 기술을 개발했다. 반도체 소자는 반도체로 만들어진 전자기기 부품을 통칭하는 말로 전자기기가 작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6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오힘찬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고밀도 집적이 가능한 고성능·고신뢰 신축성 무기 박막 트랜지스터(TFT)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유연 디스플레이는 고무줄처럼 팽팽해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패널이다. 유연 디스플레이 해상도를 높이려면 발광다이오드를 촘촘하게 배치해야 하는데 여기에 고성능 신축성 반도체 소자가 필요하다. 반도체 소자는 전류를 조절해 화면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그간 신축성 반도체 소자에 쓰인 유기물 소재는 유연성이 좋지만 전기적 성능,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무기물 소재는 성능과 효율 면에서 유기물 반도체 소자보다 뛰어났지만 유연성이 떨어졌다. 유연 디스플레이에 어떤 부품을 쓸지 딜레마가 있었다는 것이다.

신축성 산화물 반도체 트랜지스터 배열 방식을 나타낸 그래픽. /ETRI 제공

ETRI 연구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신축성 반도체 소자 설계방식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구불구불한 말발굽 형태의 배선 위에 고성능 산화물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고밀도로 심었다. 이렇게 하면 반도체 성능과 효율은 물론 부품 신축성까지 챙길 수 있다. 평소 크기의 두 배가 될 정도까지 잡아당겨도 파괴되지 않고 성능을 유지한다.

ETRI의 신축성 반도체 소자는 기존 제품 대비 집적도가 15배 향상됐다. 전류 구동 성능 역시 2배 이상 높아졌다. 제품 소형화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구현 가능성을 동시에 입증한 셈이다.

또 반도체 표준공정과 호환되며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TV, 자동차, 헬스케어 등 신축성 소재가 필요한 여러 제품군에 적용 가능하다.

오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빠른 연구개발 속도로 우리나라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 격차가 많이 좁혀지고 있다”며 “유연 전자소자 기술을 통해 우리나라가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향후 연구진은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신축성 반도체 공정을 더욱 단순화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 과학 전문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 8월 24일 온라인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