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대 연구진은 얼음 조각을 하듯 저온 센서인 트립M8을 급속 냉각해 구조를 밝혀냈다./Joana C. Carvalho

가을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가 우리 몸의 저온 센서가 작동하는 원리를 처음으로 포유류에서 확인했다. 앞으로 온도 센서를 조절해 염증이나 만성 통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듀크대의 이석용 교수 연구진은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포유류에서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감지하는 분자의 형태 변화를 생쥐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저온 감지 센서의 형태 변화 확인

연구진은 생쥐의 세포막에서 저온 감지 센서인 ‘트립(TRP) M8′ 단백질을 추적했다. 트립M8 단백질은 세포막에서 전기를 띤 입자인 이온이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트립M8 단백질은 섭씨 25도 이하에서 열린다. 일종의 냉(冷) 센서인 셈이다.

연구진은 트립M8 단백질이 저온을 감지할 때 형태가 바뀌는 것을 포유류인 생쥐에서 처음 확인했다. 이전에는 단백질 구조가 비슷한 조류에서만 연구했다. 이온이 오가는 통로는 일종의 필터로 보면 된다. 특정 이온만 통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온 통로 단백질이 열릴 때 모양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석용 교수 연구진은 저온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트립M8 단백질이 온도 저하를 감지하면 형태가 점점 바뀌면서 이온을 통과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테면 단백질에 멘톨이 결합하는 과정을 순간 순간 급속 냉각해 3차원 구조를 파악한 것이다. 트립M8을 통과한 이온들은 저온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PIP2라는 지질이 트립M8 통로가 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알아냈다.

이 교수는 “트립M8 단백질의 구조를 알면 염증이나 통증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염좌나 골절, 관절염이 발생하면 몸에 염증이 생긴다. 이때 저온 센서인 이온 통로를 활성화시키면 냉감을 유발해 염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빈대로 저온 센서가 지나치게 작동하면 찬물에 손을 담그면 피부가 창백하게 변하는 레이노병이나 온몸에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섬유근육통 같은 이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트립M8 단백질 기능을 적절히 억제하면 이런 이상 반응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하 잎을 붙인 민트 아이스크림. 듀크대 연구진은 박하 잎의 멘톨 성분이 인체의 저온 센서를 작동시켜 청량감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pixabay

멘톨이 주는 청량감도 자온 센서 덕분

저온 센서는 특정 화학물질에도 작동한다. 여름에 인기가 높은 박하 향(민트) 아이스크림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아이스크림과 온도가 같아도 뇌의 체감(體感) 온도는 더 낮아 인기가 높다.

이 교수는 앞서 2019년 사이언스에 박하 잎 성분인 멘톨이 청량감을 주는 원리를 트립M9 단백질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이 교수는 사람 단백질과 구조가 거의 같은 목도리딱새의 트립M8을 저온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멘톨이나 온도가 낮은 물질은 특정 지방 성분과 비슷한 곳에서 트립M8에 결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지방이 이온 통로 개폐 조절에 관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포유류에서 직접 트립M8 단백질과 지방의 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얼음 찜질을 하면 감각이 무뎌져 통증이 가시는 것처럼 멘톨 성분은 진통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석용 교수는 “온도가 조금만 내려가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도 멘톨로 냉 센서를 조절하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용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록펠러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으며 2009년부터 듀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참고자료

Science(2022),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d1268

Science(2019),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v9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