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약물, 암세포 연쇄 킬러’로 불리는 약물이 있다. 면역세포가 항암제로 변신한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T세포’이다. 과학자들이 이런 면역항암제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CAR-T세포가 줄기세포를 닮도록 하는 것이다. 줄기세포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원시 세포이다. 면역항암제는 줄기세포 상태로 회춘(回春)하면서 항암 효능이 더 강력해지고 오래 갔다.

면역항암제인 CAR-T세포는 시간이 가면 항암 능력이 떨어진다. 과학자들이 FOXO1이라는 단백질을 증폭시켜 깜빡이던 전구와 같던 CAR-T세포를 회춘시키는 데 성공했다./미 스탠퍼드대

◇줄기세포 상태로 돌려 치료 능력 배가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0일(현지 시각) “맞춤형 면역항암제인 CAR-T세포에 줄기세포를 닮게 만드는 단백질을 추가하면 암세포 공격력이 강화되고 더 오래 간다”고 밝혔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호주 피터 맥캘럼 암병원 연구진은 각각 이날 네이처지에 CAR-T세포를 줄기세포처럼 회춘시켜 항암 능력을 배가시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CAR-T세포는 인체 면역체계의 주력군인 백혈구 T세포에 암세포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추가해 항암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추출해 암세포 인식 능력을 추가한 뒤 다시 환자 몸에 집어넣는다.

다만 지금까지 이 치료제는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에는 효과를 보였지만, 유방암이나 폐암 같이 장기에 생기는 고형암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암세포와 싸움이 오래 이어지면 항암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CAR-T세포 치료를 받고 1년 뒤에도 완치 상태를 유지하는 비율은 50% 미만이다. CAR-T세포가 환자에서 암을 완전히 제거할 만큼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호주 연구진은 CAR-T세포를 회춘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T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만드는 방식이다. 세포 나이가 어려진 만큼 몸 안에서 더 빨리 증식하고 더 오래 간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대학병원의 투오치 우(Tuoqi Wu) 교수는 네이처지에 “이번 논문들은 암 환자를 위한 치료용 T세포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CAR-T세포 치료제를 만드는 과정./Malaghan Institute of Medical Research

◇회춘 단백질 증폭, 지친 세포 되살려

에반 웨버(Evan Weber)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와 크리스털 맥콜(Crystal Mackall)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된 CAR-T세포를 비교했다. 어떤 환자는 면역항암제가 잘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도 있었다.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치료 효과가 좋았던 T세포에는 효능이 좋지 않았던 세포보다 유전자 41개가 더 많이 작동했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들은 모두 FOXO1이라는 단백질이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FOXO1이 이를테면 전자기기에서 모든 회로를 조절하는 마스터 스위치(master-switch)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T세포는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를 빨리 제거하거나 증식하지 못하게 한다. 항체를 만드는 B세포를 돕기도 한다. 한번 적과 싸운 T세포는 평화 시에도 기억 T세포의 형태로 몸에 머물다가 같은 적이 다시 오면 바로 대응한다. 연구진은 CAR-T세포가 평소보다 FOXO1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들도록 변형했다. 그러자 CAR-T세포가 줄기세포 유사 기억 T세포와 비슷해졌다. 줄기세포 유사 기억 T세포는 장기간에 걸쳐 기억 T세포들의 숫자를 유지해주는 재생기능을 가진 세포이다.

다음에는 암에 걸린 생쥐에 FOXO1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드는 CAR-T세포를 투여했다. CAR-T세포는 혈액암은 물론, 고형암에도 효과가 있었다. 줄기세포 유사 T세포는 기존 CAR-T세포보다 암세포를 더 완벽하게 줄이고, 몸 안에서 더 오래 갔다.

CAR-T세포(주황색)가 암세포(녹색)를 공격하는 모습. 과학자들이 CAR-T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회춘시켜 항암 능력을 배가시켰다./Eye Of Science/Science Photo Library

◇마스터 스위치 분자 2개 동시 증폭 목표

호주 피터 매컬럼 암병원의 필립 다시(Phillip Darcy) 교수 연구진도 다른 방법으로 CAR-T세포가 회춘하면 항암 능력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면역 신호물질인 인터루킨(IL)에 주목했다. 특정 병원체에 효과가 있는 T세포는 인터루킨-15(IL-15)의 영향을 받아 몸에 오래 머무는 기억 T세포로 분화한다.

연구진은 CAR-T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해, IL-15가 FOXO1과 관련된 유전자를 작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CAR-T세포가 FOXO1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들도록 변형하자 역시 줄기세포와 비슷해졌을 뿐만 아니라 성숙하면서 지지치 않고 암과 싸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FOXO1 단백질은 CAR-T세포의 신진대사를 개선해 생쥐 몸에서 더 오래 항암 효과를 보였다.

호주 연구진은 앞으로 2년 이내 실제 암 환자에게 FOXO1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드는 CAR-T세포를 임상시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망은 밝다.

앞서 2019년 스탠퍼드대 의대의 맥콜 교수는 CAR-T세포의 지구력을 높이는 c-Jun이라는 또 다른 마스터 스위치 단백질을 발견했다. 이 단백질 역시 T세포가 항암 능력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의 웨버 교수는 현재 이 단백질을 과다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CAR-T세포를 백혈병 환자에게 임상시험하고 있다. 웨버 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맥콜 교수와 같이 연구했다. 맥콜 교수는 “같은 시스템이 FOXO1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두 단백질을 동시에 증폭하면 CAR-T세포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300-8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242-1

Nature(2019), DOI: https://doi.org/10.1038/s41586-019-1805-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