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보시기에 임상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전성 망막 질환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의 질환에 맞는 치료제가 나오면 다른 질환에도 같은 프로세스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돌연변이가 있는 유전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유전자 치료를 할 수 없는 건가요?”

겨울비가 내리던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 의과대학 교육관 4층의 세미나실이 가득찼다. 평소라면 서울대 의과대학의 교수나 학생들이 사용했을 공간이지만, 이날은 희소질환인 유전성망막질환(IRD)을 가진 환자들의 부모가 세미나실을 가득 채웠다. 이 분야 권위자인 김정훈 서울대 의과대학 소아안과 교수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하고 있는 유전자 치료제의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어린 자식을 환자로 둔 부모들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 1시간 40분에 걸쳐 진행된 설명회 동안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고 김 교수의 설명 하나하나를 귀담아 들었다. 얼마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 가위 치료제인 ‘엑사셀’을 승인하면서 희소질환에 대한 유전자 치료 가능성이 열렸기에 더욱 관심이 뜨거운 모습이었다.

김정훈 서울대 의과대학 소아안과 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 의과대학 교육관에서 열린 유전성 망막질환 유전자·세포 치료제 설명회에서 연구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이 자리에서 김 교수는 IRD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전했다. 김 교수는 “연구자주도 임상 전단계까지는 진행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망막층간분리를 첫 번째 치료제 개발 대상 질환으로 꼽았다. 망막층간분리는 X염색체를 따라서 발생하는 유전질환으로 남자아이에게 발생한다. 다른 IRD에 비해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고 환자들도 꽤 오랜 시간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국내 망막층간분리 환자의 가족이 적극적으로 가족력을 확인해 준 덕분에 돌연변이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그는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인간화 마우스 모델을 구현해 실험을 진행했고, 세포 수준에서 교정 효율이 40% 수준까지 나왔다”며 “100개의 세포가 있으면 40개가 교정된다는 의미인데, 망막질환의 경우 황반부에만 작용하면 되기 때문에 교정 효율이 7~10%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세포 수준의 교정 효율이 높더라도 인체 조직 단계로 가면 4분의 1 정도로 낮아진다. 하지만 세포 수준에서 40%의 효율을 기록한 만큼 인체 조직까지 가더라도 치료에 충분한 효율이 나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IRD라는 희소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는 김 교수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유전자 교정 분야 전문가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세포 수준에서 교정 효율이 40%까지 나왔다는 실험 결과를 김 교수에게 전한 건 김형범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였다. 김형범 교수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유전자가위 연구자다.

김정훈 교수가 구상하는 희소질환 첨단 유전자 치료 플랫폼 구축에는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참여하고 있다. IRD 환자의 피를 뽑아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들고, 여기에 유전자 교정을 통해 건강한 세포로 바꾼 뒤 오가노이드 망막조직에 집어넣어 이를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이다. 환자 맞춤형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구본경 단장이 이 역할을 맡고 있다.

구본경 단장은 “IRD는 희소질환이다보니 제약사들은 관심이 없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대신해서 나선 것”이라며 “환자 맞춤형 오가노이드를 만들어서 거기에 유전자 가위를 집어넣어서 치료제의 효능을 테스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구 단장은 “기존에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개발한 기술이 있고, 오가노이드 같은 경우는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어본 윤기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와 협력해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훈 교수는 “망막층간분리 환자가 모두 88명인데 이 가운데 22개 돌연변이가 확인됐다”며 “바꿔서 말하면 22개의 돌연변이만 잡으면 우리나라에서 망막층간분리로 실명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정훈 서울대 의과대학 소아안과 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 의과대학 교육관에서 열린 유전성 망막질환 유전자·세포 치료제 설명회에서 연구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김 교수가 전한 희망적인 연구 결과에 어린 환자의 부모들은 언제쯤 치료가 가능할 지부터 물었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연구 성과보다도 실제 치료제를 언제 볼 수 있을지다.

여기서 김 교수는 답답한 속내를 비쳤다. 국내 최고 연구진이 세계적으로도 앞선 기술로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임상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김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보다 까다로운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규제를 이유로 꼽았다. 그는 “환자 맞춤형 인간화 생쥐 모델을 구축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기술과 전달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미국 FDA는 인간화 생쥐 모델 없이도 IPS에서 치료 가능성이 확인되면 임상을 진행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처럼 IPS만으로 가능해지면 우리도 프로세스가 단순해지고 치료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임상에 필요한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를 만들어서 늦어도 내후년 초에는 임상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그는 “지금부터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해서 정부를 설득하든, 외국과 협력하든 임상에 돌입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