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은 7일(현지 시각) 내년에 의학계에서 주목해야 할 임상시험 11가지를 꼽았다./Nature Medicine

이르면 내년에 난치병인 파킨슨병 줄기세포치료제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 백신이 실제로 사람에게 치료 효과가 뛰어나고 안전한지 첫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폐암 조기진단 인공지능(AI)와 우울증 치료앱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은 7일(현지 시각) 2024년 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임상시험 11가지를 선정해 공개했다. 벤 존슨 네이처메디신 선임편집자는 “이번에 꼽은 임상시험들은 전세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을 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 파킨슨병 치료하는 줄기세포, 유전병 고치는 DNA 편집 성공할까

파킨슨병 증상./CarrotsMitHummus

가장 먼저 파킨슨병 줄기세포 치료제(STEM-PD)에 대한 임상1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스웨덴 스코네대학병원 연구진은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추출한 도파민 뉴런을 50~75세인 중등도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첫 임상시험이다. 첫 번째 환자군은 지난 2월 투여 받았고 내년 말에 1상 결과가 나올 계획이다.

멀린 파머 스웨덴 룬드대 발달및재생신경생물학연구팀장(미국 뉴욕줄기세포재단 교수)은 “(이미 병이 진행된) 중등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이라 만약 효능이 확인된다면 수많은 환자들에게 치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버브테라퓨틱스는 유전성 질환인 ‘이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증’에 대한 DNA 편집 치료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임상시험은 생체 내 DNA 염기를 편집하는 세계 최초의 연구다.

이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증은 300명 중 1명에게 있을 만큼 흔한 유전질환 중 하나로, 일명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저밀도 지질단백질(LDL)을 분해하는 유전자(PCSK9)에 돌연변이가 원인이다. 기존에는 스타틴이라는 약물로 이들이 심혈관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치료하지만 대부분 환자는 이 약물이 잘 듣지 않는다.

DNA 편집 치료제인 VERVE-101는 간에서 PCSK9 유전자를 비활성화해 심혈관질환을 유발하는 LDL를 지속적으로 감소시킨다. 이 치료제는 아데닌 염기를 편집할 수 있는 메신저리보핵산(mRNA)과 DNA상에서 적절한 곳까지 데려다주는 가이드RNA로 이뤄져있다.

◇ 기존보다 효능 뛰어난 에이즈 백신·말라리아 백신

미국 비르바이오테크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VIR-1388)을 개발해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달 2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에이즈 종식을 위한 걷기' 행사./연합뉴스

에이즈 백신과 말라리아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도 눈에 띈다. 미국 비르바이오테크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VIR-1388)을 개발해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안전성과 반응성, 면역원성, 즉 실제로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입했을 때 면역반응이 잘 일어나는지 평가한다.

VIR-1388는 면역세포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잡아먹는 T세포 반응을 유도해 에이즈를 예방하는 원리다. 에이즈 병력이 없는 건강한 18~55세 성인을 대상으로 백신과 위약을 투여해 효과를 비교할 예정이다. 의학계에서는 이번 에이즈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 성과에 따라 공중 보건 관점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인도혈청연구소는 부르키나파소, 케냐, 탄자니아, 말리 등 아프리카 4개국의 생후 5~36개월 아기를 대상으로 말라리아 백신(R21)에 대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미 100년 전부터 말라리아 백신을 개발해왔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 이유는 말라리아원충에 백신이 작동하려면 높은 항체반응이 필요한데 기존에 개발한 것들은 효능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백신은 실제 병원체가 가진 일부분(항원)을 갖고 있어 병원체 없이도 체내에서 미리 면역계를 활성화시키는 원리다. 아드리안 힐 옥스퍼드대 백신학과 교수는 “R21이 기존 말라리아 백신에 비해 항원이 빽빽하게 나 있는 나노 입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효능이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상용화된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 역시 이러한 특징 때문에 평생 동안 효과가 있다.

◇ 폐암 조기 찾아내는 AI, 응급환자 고위험군 분류하는 AI

영국 노팅엄대학병원 NHS 트러스트 연구진은 흉부 엑스선과 컴퓨터 단층촬영(CT) 이미지를 분석하는 딥러닝 알고리즘(qXR)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흉부 X선 사진./Mikael Häggström

영국 노팅엄대학병원 NHS 트러스트 연구진은 흉부 X선과 컴퓨터 단층촬영(CT) 이미지를 분석하는 딥러닝 알고리즘(qXR)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영국 6개 병원에서 15만 명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흉부 X선이나 CT 영상을 감별할 때 이 AI를 사용하면 진단 시간이 단축되는지 시험하고 있다. 중간 결과에서는 기존 63일에서 32일로 거의 절반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볼드윈 노팅엄대학병원 호흡기내과 명예교수는 “폐암 환자의 4분의 3이 늦게 진단을 받는다”며 “조금이라도 조기에 발견해 진단한다면 그만큼 생존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AI가 폐암을 발견, 진단하는 시간을 50% 단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메디컬센터 연구진은 2만 6000명을 대상으로 CT 검진 AI(4-IN THE LUNG RUN)에 대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중간 결과에서 이 AI를 활용하면 CT 검진을 2년에 한 번 씩 만해도 매 년 하는 것만큼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일 수 있음이 확인됐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메디컬센터 연구진은 응급실에 온 환자 중에 누가 고위험군인지 정확히 분류해내는 머신러닝 알고리즘(RISKINDEX)에 대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이 AI는 환자의 31일 사망률을 예측해 보여준다. 네덜란드 병원 4곳에서 개발됐으며 27만 6327명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됐다. 스티븐 믹스 마스트리히트대 중앙진단연구소 혈액학부서장은 “응급실에서 환자의 응급한 정도에 따라 고위험군을 분류하면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은 7일(현지 시각) 내년에 의학계에서 주목해야 할 임상시험 11가지를 꼽았다./Nature Medicine

유방암과 흑색종 등 암 치료와 관련된 임상시험도 주목된다.

영국 아스트레제네카는 뇌 전이 유무와 관계 없이 HER2 유전자를 가진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항체-약물접합체(ADC)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의 효능과 안전성을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ADC는 특정 표정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에 약물을 결합시킨 형태다.

네덜란드 암 연구소는 3기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치료제인 ‘이필리무맙(여보이)’과 ‘니볼루맙(옵디보)’ 병행치료에 대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이 임신 중후반에 접어들었을 때 인지 치료를 할 수 있는 앱(THP-TA)에 대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 위탁 보호 중인 0~5세 어린이의 정신 건강을 위한 뉴올리언스 중재 모델에 대한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3-026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