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과 연세대 공동 연구진은 간암에서만 나타나는 메틸화 마커를 정량 분석하는 검사법을 설계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유수종 ·조은주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영준 연세대 생화학교실 교수./서울대병원

국내 연구진이 인종이나 병의 경과, 기존 간 질환 유무와 관계 없이 간암을 간편하고 효과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혈액 검사법을 개발했다. 간암에만 나타나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설계했다. 바이오마커란 인체 내부의 변화를 알려주는 단백질이나 유전물질, 대사 물질 같은 생체 지표를 말한다.

서울대병원은 유수종·조은주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영준 연세대 생화학교실 교수 공동 연구진이 간암에서만 나타나는 메틸화(化) 마커를 정량 분석하는 검사법을 설계했다고 17일 밝혔다. 메틸화는 환경 변화에 따라 유전자에 탄소 하나와 수소 3개로 이뤄진 메틸기라는 물질이 붙는 것을 말한다. 메틸화가 일어나면 후천적으로 유전자 기능이 달라진다.

연구진은 메틸화 검사법으로 활용해 일반인 202명, 간암 위험군 211명, 초기 간암 환자 170명, 말기 간암 환자 143명에서 채취한 혈액시료 726개를 분석한 결과, 57%의 정확도로 간암을 판별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혈액검사의 양성 진단 정확도인 45%보다 높은 수치다. 메틸화 검사와 기존 검사 결과를 함께 분석하면 10명 중 7명 꼴로 간암 양성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간암은 국내에서 일곱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환자 10명 중 6명이 5년 이내 사망할 만큼 생존율이 낮다. 간경변 증상이 있거나 간염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들은 간암으로 발전하기 쉬운 만큼 정기적으로 간암 검사를 한다. 그러나 기존 검사는 다른 간 질환과 실제 간암을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간암이 발생하는 원인이 다양하고 인종마다 양상도 다르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간암에만 나타나는 메틸화 마커에 주목했다. 간암세포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메틸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DNA 두 곳(RNF135, LDHB)의 메틸화 수준이 간암에서 특이적으로 높아 진단용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DNA들의 메틸화 수준을 점수화하는 검사법을 설계했다. 소량의 혈액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증폭하는 중합효소 연쇄 반응(PCR)을 활용했다.

이번 검사법은 간암 진행에 따라 DNA가 변하는 정도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간암 진행 상태를 파악해 모니터링하고, 환자마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수종 교수는 “이번 연구로 간암 고위험군에서 간암 발생 여부를 간편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어 뜻 깊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DNA 메틸화 마커에 기반한 간암 진단법이 기존 감시 검사의 정확도를 보완할 뿐만 아니라 인종, 병의 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간암 진단에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영준 교수는 “후속 연구를 통해 환자의 임상 데이터 및 혈액 내 메틸화 마커의 미세한 양 변화 등을 고려한 인공지능(AI) 기반 간암 발생 위험도 모델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달 6일 국제 학술지 ‘BMC 분자암’에 실렸다.

참고 자료

BMC Molecular Cancer(2023), DOI: https://doi.org/10.1186/s12943-023-018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