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인 T세포에 감염된 에이즈 바이러스(노란색)의 전자현미경 사진./NIAID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기술 개발을 이끈 카탈린 카리코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2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바야흐로 mRNA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대형제약사들은 이제 코로나19를 넘어 독감이나 암, 에이즈에 이르는 다양한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mRNA를 연구하고 있다. 2022년 9월 과학저널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리뷰 드럭 디스커버리에 실린 보고서는 오는 2035년까지 전체 mRNA 백신 치료제 시장이 230억 달러(약 27조554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 모더나 mRNA 흑색종 항암제 임상 1상 성공

mRNA기술은 코로나19를 넘어 에이즈, 흑색종⋅폐암 치료제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암 백신이다. 사실 mRNA 백신은 당초 암치료용으로 개발됐다. 암 중에는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것들도 있어 백신에 대한 요구가 컸다. B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암을 일으키고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나아가 바이러스가 유발하지 않는 암도 mRNA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면역 항암 백신이다. 암세포에만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인체에 전달하면 암세포를 공격할 항체가 만들어진다.

mRNA 암백신 원리/조선DB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낸 모더나는 지난해 12월 흑색종(피부암) 항암 백신이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환자 15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에서 mRNA 항암백신과 미국 MSD(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함께 사용했더니 키트루다만을 사용했을 때보다 암 재발률이나 사망률을 44% 낮췄다.

mRNA 기술이 코로나 이외 질병에 적용돼 임상을 거친 것은 처음이다. mRNA 백신은 암환자 고유의 유전자를 전달해 맞춤형 치료까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암 재발을 막기 위한 mRNA 백신도 가능하다. 개별 환자 암세포에서 강력한 면역반응을 보이는 특정 변이를 골라낸 뒤, 이 유전자 정보를 mRNA에 담아 맞춤형 백신을 만들 수 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흑색종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고, 독일 큐어백은 폐암을 공략하고 있다.

◇ 에이즈 mRNA 백신 임상 1상 중

mRNA 백신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성과 유연성이다. 모더나는 국제에이즈백신계획(IAVI)과 비영리 연구기관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와 함께 mRNA 방식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모더나와 IAVI는 작년 남아프리카 및 르완다에서 mRNA 방식의 에이즈 백신 임상 1상에 돌입했다.

수십 년 넘게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에이즈 백신 개발에 도전했지만 에이즈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워낙 심해서 성공한 적이 없다. 얀센이 지난 2021년 아프리카에서 진행한 에이즈 백신 임상시험도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백신은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를 몸 속에 집어넣어 사람 몸이 그에 대항하는 면역 단백질인 항체를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로 개발했다.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나, 바이러스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 즉 벡터에 넣어 전달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백신은 세포나 달걀에서 배양해야 하기 때문에 몇 달씩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

mRNA는 세포핵 밖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일종의 ‘설계도’로 쓰이는 유전물질이다. mRNA 백신은 몸 안에서 항원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를 주입하는 식이니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제조 기간이 짧아 단기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또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만 알면 빠르게 설계할 수 있어 초기 개발을 위한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도 쉽다. 2020년 1월 10일 중국에서 코로나 유전자 정보가 공개되자 모더나는 48시간 만에 백신을 설계했고, 25일 만에 1상 임상시험에 필요한 백신을 만들었다.

에이즈와 코로나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빠르게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 백신을 만들기 어려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모더나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결합할 때 쓰는 단백질 중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 부분을 공략했다. mRNA를 주입하면 면역세포인 B세포가 바이러스에 결합하는 항체를 만든다.

◇ 말라리아, 뎅기열, 광견병, 헤르페스 백신까지

영국 제약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말라리아를 예방할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한 해 4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다. 대부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희생된다. GSK 백신은 소량의 mRNA만 주입해도 몸 안에서 자가 증식하도록 했다. 바이오엔테크도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EU)과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

(서울=뉴스1) 조태형 기자 = 폴 버튼 모더나 글로벌 최고의학책임자가 19일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더나의 mRNA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모더나코리아는 이날 간담회를 통해 '모더나 mRNA 기술과 엔데믹 시대의 전략'을 소개했다. 2022.7.19/뉴스1

모더나는 또 모든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범용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독감 백신은 매년 새로 만든다. WHO가 그해 유행할 바이러스를 예고하면 독감이 유행하기 6개월 전부터 달걀이나 동물세포로 생산한다. 모더나는 모든 독감을 막아낼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돌연변이가 거의 없는 바이러스 단백질 4가지를 동시에 공략했다. 단백질을 직접 주입하지 않고 mRNA를 전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더나는 동물실험에서 다양한 독감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효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드루 와이스먼 교수는 생식기 헤르페스(음부 포진)를 차단하는 mRNA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 일리노이대의 저스틴 리히너 교수는 매년 4억 명이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공략할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인체에 감염되는 뎅기열 바이러스 4종을 동시에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 큐어백은 광견병 예방용 mRNA 백신도 개발해 임상 1상 시험에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mRNA가 백신이나 항암재는 물론 희소질환,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희소질환은 mRNA가 생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생기 때문이다. mRNA는 단백질 합성 정보가 담긴 유전자들만 골라 이어 붙인 형태인데, 종종 다른 부분이 끼어든다. 이른바 ‘이어 붙이기 변이(mis-splicing variant)’이다. 이런 변이는 해당 mRNA에 마치 지퍼처럼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합성 RNA 조각인 안타센스로 작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환자마다 이어 붙이기 변이 형태가 달라 치료제는 완전히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