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와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앞에서 서울백병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 발족 및 일방적 폐원 안건 상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편 서울백병원을 운영하는 인제대학교 학교법인은 오는 20일 이사회를 열고 병원 폐원안을 의결했다. /뉴스1

1941년 ‘백인제 외과병원’으로 개원한 서울백병원이 82년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원한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이사회를 열고 이 병원 폐원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이날 오전 서울시가 현재 상업용인 이 병원의 부지를 의료시설로만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예고했지만, 이사회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폐원을 의결했다.

재단은 이 병원의 최근 20년 누적 적자가 1745억 원에 이를 정도로 경영이 악화해 폐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다. 서울백병원의 경영 실적은 지난 2004년 처음 손실을 기록한 이후 개선되지 않았다.

재단은 지난 2016년부터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를 운영해 왔지만,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서울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환자 수가 줄었고,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인근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면서 경영은 갈수록 악화했다.

하지만 이번 폐원을 결정한 이면에는 이 병원 용지의 상업적 가치가 2000억~30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백병원은 서울 명동 번화가 인근에 있으며, 이 일대는 최근 재개발로 현대식 고층 빌딩이 대거 들어선 상태다.

지난해 교육부가 사립대학 재단 보유 유휴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면서 서울백병원 부지를 상업용 건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추후 이 병원 부지 활용 방안 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시는 이사회를 앞둔 이날 오전 자료를 내고 이 병원 용지를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쳐 부지가 종합의료시설로 지정되면 그 땅은 의료시설로만 사용할 수 있다. 이광구 서울시 시설계획과장은 “서울백병원이 폐원하고 용지를 매각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의료재단이 병원 운영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병원이 위치한 중구청에서 도시계획시설 결정안을 제출하면 열람공고 등 주민 의견을 청취한 뒤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즉각적인 절차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병원 부지가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되더라도 용지 매각은 가능하다. 다만 의료시설로 용도가 묶인 상황에서 매각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노만규 서울시 교육문화계획팀장은 “서울 도심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병원 폐원을 서울시와 협의 없이 재단 이사회가 결정해 버리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며 “도시계획시설 지정은 신속하게 진행하면 몇 개월 안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일부 교수와 직원들은 내부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노조는 이날 병원 로비와 이사회가 열린 대회의실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노조 관계자는 “병원 측은 경영이 악화했다고 하면서 정확한 숫자는 공유하지 않고 있다”며 “직원 고용 승계를 약속한다고 하지만, 인근의 일산백병원과 상계백병원 경영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부산과 해운대 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