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5월 21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6회 세계보건총회에 참석한 모습. 이번 총회에서 '글로벌 팬데믹 조약'을 공개했으나, 조약에 사용된 단어의 구속력이 크게 떨어져 방역 정책 추진에 힘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다음 팬데믹(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 간의 약속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팬데믹을 막고 발 빠른 대응을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힘을 모아야 하지만 이를 위한 조약의 구속력이 약해 실질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76차 세계보건총회(WHA)에서 공개한 ‘글로벌 팬데믹 조약’을 두고 전문가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1일(현지 시각) 전했다. 전문가들의 조약에 사용된 단어의 구속력이 크게 떨어져 방역 정책 추진에 힘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WHO는 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WHA를 열고 글로벌 팬데믹 조약의 초안을 공개했다. 이 조약은 전 세계가 코로나에 대한 대응에 미흡했던 것과 관련해 다음에 찾아올 팬데믹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지난 2월 1일 발표된 초안에 비해 다소 강제성이 떨어지는 용어를 사용해 각국 정부의 동참 의지가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켈리 리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보건학과 교수는 “이전 문서에서는 ‘해야 한다’ ‘할 것이다’ 같은 용어를 사용해 각국이 미래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법을 설명했지만, 이번 문서에서는 ‘촉구’ ‘지원’으로 바뀌었다”며 “WHO 회원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팬데믹 조약은 2021년 12월 WHO 회원국이 팬데믹 예방·대비·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작성을 시작했다. 예비 문서에서는 감염병에 대한 전 세계적인 감시를 강화하고,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약물, 진단 기술을 공유해 평등한 방역 정책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일부 국가가 백신과 치료제를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팬데믹 기간 동안 의약품의 지적재산권의 일시적인 포기도 권고했다. 의약품의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적 자금을 지원하면서 이런 내용의 조건을 담을 것을 권장했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초안에서는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 전문매체 헬스폴리시워치가 지난달 22일 공개한 조약 내용에 따르면 공적 자금 조달에 대한 내용은 삭제됐고 지적재산권 포기에 관한 문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이 추가됐다.

살림 압둘 카림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 보건학 교수는 “여전히 코로나 백신, 치료제, 진단 키트가 일부 국가에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포기를 권장하는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WHO의 조약이 보다 강한 구속력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리 문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원 연구원은 “각국 정부는 위기가 닥치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조약에 구속력 있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간 협상 기구는 이달 11일 글로벌 팬데믹 조약의 내용을 다시 의논할 예정이다. 이후 내년 5월에 열리는 WHA에서 표결을 통해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