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기업이 연구 목적으로 병원의 의료 데이터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의료 데이터 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표준화를 독려하고, 정부 산하의 의료 정보 중개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병원이 데이터심의위원회(DRB)만 거쳐도 가명 정보로 기업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일 보건복지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 수출전략 회의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고도화를 위해 공공 민간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전략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먼저 100만 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을 추진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2만5000명 데이터를 올해 하반기에 우선 개방한 뒤 2030년∼2032년에는 100만 명 통합 데이터 전체를 개방할 계획이다. 바이오 빅데이터는 임상·유전체 정보, 개인 건강정보 등이다.
이와 함께 한국인에 특화한 암 데이터 세트(자료 집합)를 만들고, 구축 대상 질병 범위를 암 이외 심혈관계 질환 등까지 확대하는 ‘케이-큐어(K-CURE)’ 사업이 추진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이 보유한 암 환자 정보를 암 정책·연구를 위해 개방하고, 한국인 특화 10대 암 임상 정보를 표준화해 데이터중심병원들에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국가 재정이 소요되는 연구·개발(R&D) 과제나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으로 수집·생산되는 데이터는 올해 하반기부터 의무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 영역의 데이터 활용과 개방도 확대하기 위해서도 여러 절차와 제도를 개선한다. 현재 제각각으로 쓰고 있는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EMR)을 표준화하는 인증제도를 활성화한다.
또 보건의료데이터를 중개하는 공공 플랫폼을 만들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한다. 데이터의 민감성을 고려해 공공기관인 보건의료정보원이 플랫폼을 구축하고, 가명 처리가 적정한지 등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기업이 연구 목적으로 의료데이터를 요청하면 데이터심의위원회(DRB)를 거쳐 병원이 가명 정보로 보를 제공할 수 있는 수 있도록 하는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 관련 내용을 명시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의료데이터를 받으려면 데이터심의위원회와 생명윤리위원회(IRB)를 이중으로 거쳐야 해서 최장 6개월 이상 기간이 걸렸다. 앞으로 가이드라인이 정착돼 DRB로 일원화되면 이 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 복지부 설명이다.
또 가명 처리가 가능한 유전체 정보 범위를 늘려 관련 연구와 제품·서비스 개발을 촉진한다. 유전체 정보는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한 제한적 범위로 개방을 검토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와 함께 당사자가 개인 정보를 관리하고 공유하는 ‘마이데이터’ 사업을 의료 분야까지 확대하기 위해 규제를 개선한다.
공공 의료데이터 가운데 개인정보 침해 문제에 있어서 덜 민감한 건강검진 정보, 예방접종 이력 등에 대해서는 오는 7월부터 제3자 전송 요구권을 우선 도입하고, 내년부터 개인 의료데이터에 대한 제3자 전송 요구권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개인이 동의하면 의료·건강정보를 의료기관이 돌봄 서비스 제공 기관이나 민간 기업 등 제3자에 전송하는 식이다.
이 밖에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올해 중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한다. 가입자가 요청하면 병원에서 보험사에 실손보험 청구 서류를 전산으로 보내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은 그간 여러 차례 시도됐으나 개인정보 유출 등 우려로 매번 무산돼 왔다.
심은혜 복지부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장은 “공공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같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건강보험 데이터의 민간 보험사 제공도 사회적 우려와 안전성을 함께 검토해 (보험 가입 거절, 보험료 인상 등) 국민에게 불이익이 되는 활용은 금지하도록 지침에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데이터심의위원회와 생명윤리위원회 절차를 개선하고, 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립암센터가 맡는 보건 의료분야 결합 전문기관에 내년부터 민간 기관도 추가로 지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