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한 편의점에 진열된 숙취해소제. /허지윤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숙취해소제에 ‘숙취 해소’를 표기하거나 광고하려면 과학적 근거를 내놓을 것을 의무화하면서 제약사와 식음료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존에는 제품에 ‘숙취 해소’ 기능을 다소 쉽게 표기했지만 2025년부터는 숙취 해소 기능을 표기하거나 이를 앞세워 광고하는 게 까다로워지게 된 것이다.

2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HK이노엔(195940)은 최근 숙취해소제 ‘컨디션’과 주원료의 숙취 해소 기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인체적용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일찍이 자체적으로 인체 적용 시험을 시행해 그 결과를 영업마케팅에 활용해 왔는데, 관련 제도가 바뀌면서 새로 나온 가이드라인에 맞춰 시험에 들어갔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숙취 해소 기능성 관련한 주원료 또는 최종제품(완제품) 섭취 시 대조군 대비 알코올 숙취 심각정도(AHSS)와 급성 숙취 정도(AHS)의 유의적 개선 효과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주목적”이라며 “이를 통해 컨디션의 숙취 해소 기능성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닝케어’를 만드는 동아제약 측도 “식약처 가이드라인에 맞춰 인체 적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숙취해소제 ‘레디큐’를 만드는 한독은 내년까지 인체 적용 시험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국내에는 HK이노엔 ‘컨디션’, 삼양사(145990) ‘상쾌환’, 삼진제약(005500) ‘파티히어로’, 동아제약(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 ‘모닝케어’, 한독(002390) ‘레디큐’, 유한양행(000100) ‘내일엔’, 종근당(185750) ‘헛개땡큐골드’ 등이 판매되고 있다. 국내외 제조사들의 숙취해소제까지 합치면 그 수가 상당하다.

하지만 ‘숙취해소제’로 불리는 제품 중 현재까지 실제 숙취 해소 효능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회사는 피코엔텍 한 곳 정도로 파악됐다. 박이근 피코엔텍 전무이사는 “현재까지 국내 기업 중 정식 임상시험을 완료해 숙취 해소 효능을 입증해, 국내 임상시험 관리 사이트인 CRIS에 등록된 회사는 우리가 유일하다”라고 말했다.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숙취 해소 효과를 내세운 제품은 ‘일반 식품’으로 분류된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관련 의약품들도 간 기능개선제, 강장제, 피로해소제 등만 있다.

기업들이 숙취 해소제 기능을 밝히느라 바빠진 데는 기능성 표시 기준이 엄격해진 영향이다. 올해 6월 식약처는 ‘숙취해소 표시·광고 실증을 위한 인체적용시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인체적용시험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갖춰야 ‘숙취해소’와 관련한 기능을 제품에 표시, 광고할 수 있다는 게 가이드라인의 주요 골자다.

관계자들은 강화된 제도가 숙취해소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숙취 해소 기능을 입증하지 못하면 제품에 ‘숙취해소제’ 문구를 넣지 못하게 되는 데다 자칫 브랜드 이미지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업계에선 숙취해소제의 제형 개발이 다소 까다로워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요 제약 기업들 사이에선 인체 적용 시험을 포함한 주요 전략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회사 관계자는 “숙취해소제 표시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캡슐·정제, 스프레이·앰플 형태에는 숙취해소 기능 표시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는 제형으로는 숙취해소제를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다.

최근 제조사들이 숙취 해소 기능성 표시를 할 수 있는 음료, 환, 젤리 같은 다양한 제형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선 난립하던 시장이 정리되면서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한 회사들은 성장의 기회를 삼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