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제넨텍 조시나 레디 R&D 총괄 부사장이 지난 20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한 호텔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로슈 제공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21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 2023′에서 초기 폐암 환자의 재발 위험을 낮춘 ALK 억제제 ‘알레센자(성분명 알렉티닙)’의 임상 3상 시험(알리나)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결과는 폐암 중에서도 희귀암에 속하는 ‘ALK(역형성 림프종 인산화효소) 양성 변이’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초기 환자에게서 암 재발 확률을 낮추고 사망 확률을 76%나 낮추며 항암 치료에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슈의 자회사인 제넨텍에서 종양·혈액학 연구개발(R&D)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조시나 레디(Josina Reddy) 부사장은 알리나 연구를 주도해 의미있는 성과를 낸 인물이다.

레디 부사장은 앞서 20일 ESMO가 열린 마드리드 현지에서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면서도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자, 매우 훌륭하고 열정적인 연구자들과 함께 수년 동안 이 연구를 해온 결과가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레디 부사장은 이어 “알레센자를 복용할 경우 76%가 개선된 것은 놀라운 결과이며, 치료법의 발전 측면에서 큰 도약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 ‘ESMO 2023′은 로슈에 매우 뜻 깊은 행사로 자리매김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디 부사장은 의대에서 종양학을 배운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처음 의사가 된 25년 전만 하더라도 ALK 양성을 비롯한 폐암의 다양한 종류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기 폐암 환자의 약 40~50%는 수술 후 보조적으로 화학요법 치료를 받아도 암이 재발하기 쉽다. 최근 들어 다양한 치료요법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ALK 양성 초기 질환에 승인된 약은 없다.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약 5%는 ALK 양성이다. 대개 폐암은 흡연자에게서 나타나지만,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양상이 다르다. 비흡연자나, 55세 이하 젊은 층, 여성에게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레디 부사장은 “알리나로 불리는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임상 3상 시험 초기만 해도 통상 30~40%의 개선 효과만 있기를 바랐는데, 예상 외로 70%를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다”며 “이는 치료법에 있어 큰 도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존에는 초기 폐암 환자들이 종양 제거 수술 이후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화학 요법을 받는 것이 유일한 표준치료법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며 “이번 임상 시험 결과로 초기 폐암 환자에게서 ‘무병생존(DFS·1차 항암치료가 끝난 후 환자가 해당 암의 징후나 증상없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ALK 양성 초기 폐암 환자는 암이 뇌로 전이될 위험이 매우 높다. 이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레디 부사장은 “이번 연구에서 암이 뇌로 전이될 확률을 78% 감소시키는 유효성이 데이터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로슈는 이번 임상 3상 시험을 위해 한국을 포함해 2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환자들을 모집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환자를 모집한 셈이다. 로슈는 특히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 데이터가 유독 많았다고 설명했다. 레디 부사장은 “아시아 중에서도 한국 환자들이 대거 임상에 참여했다”며 “한국이 임상에 있어서 중요한 국가 중 하나인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로슈는 60년 넘게 항암제 개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레디 부사장은 “125년의 역사를 가진 로슈가 추진하는 일의 중심에는 ‘환자’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늘 따라 다닌다”며 “과학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를 가진 연구자와 직원들이 연구개발(R&D)을 통한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그런 분위기야말로 이 직장을 선택하고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특별한 이유”라고 했다.

레디 부사장은 제약업계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로 불린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과학 교육을 받고 이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를 원하고 있다”며 “로슈는 국가적 배경, 인종, 민족, 학력, 경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과학과 기술에 진출하고 리더십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디 부사장은 “암에 걸린 사람을 도우려면 제약사와 병원, 대학, 환자,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암환자의 삶을 더 좋게 만들고 암을 완치하도록 돕기 위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로슈는 다양성을 조직 문화에 반영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수많은 리더급 자리에서 활약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성을 존중할 때 연구에서 좋은 성과와 휼륭한 리더가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럽종양학회(ESMO) 연례학술회가 20~24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막을 올렸다. ESMO에 참가한 로슈 부스./마드리드(스페인)=장윤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