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의 간에서 추출하는 스쿠알렌은 백신 효과를 높이는 면역증강제로 쓰인다.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일시에 백신 수요가 늘면 상어가 대규모로 희생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인공 스쿠알렌을 합성해 사람과 상어를 모두 구할 길을 열었다./Shark Allies

과학자들이 백신에 쓰이는 상어 추출물을 인공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멸종 위기에 놓인 상어를 보호하면서도 사람 생명도 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의 크리스토퍼 폭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16일 국제 학술지 ‘npj(네이처 파트너 저널)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쓰이는 상어 스쿠알렌(squalene)을 인공 합성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스쿠알렌은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지질 분자로, 백신과 함께 투여하면 면역반응이 더 강하게 유도되고 오래간다. 주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쓰이며, 보습, 노폐물 흡착에도 뛰어나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된다.

◇멸종위기 상어와 인명 동시에 구해

문제는 상어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 이래 지난 50년 동안 스쿠알렌이나 요리용 지느러미 때문에 남획되고 다른 물고기를 잡는 바늘에 걸려 혼획되면서 개체수가 71%나 감소했다.

인도의 어시장에 나온 상어들. 상어는 남획과 혼획으로 지난 50년 새 개체수가 71%나 급감했다./위키미디어

과학자들은 상어를 구하고 인명도 살리기 위해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스쿠알렌을 인공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합성생물학이란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해 특정 물질의 생산에 최적화하는 연구 분야이다.

미국의 합성생물학 전문기업인 아미리스(Amyris)는 유전자를 변형한 효모로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베타-파르네신(β-farnesene)을 대량 합성했다. 베타-파르네신은 식물성 화합물로, 스쿠알렌이 분해될 때 나온다. 스쿠알렌은 탄소원자 30개로 구성되지만 베타-파르네신은 절반만 갖고 있다.

폭스 교수는 아미리스의 크리스토퍼 패던 박사와 함께 배타-파르네신과 다른 분자들을 다양하게 결합시켜 인공 스쿠알렌 20종을 합성했다. 연구진은 인공 스쿠알렌을 사람 혈액에 넣었다. 그러자 상어 스쿠알렌처럼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켰다.

다음엔 독성을 없앤 H5N1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만든 불활성 백신과 인공 스쿠알렌을 생쥐에 주입했다. 폭스 교수는 “실험 결과 인공 스쿠알렌 중 4~5종은 상어 스쿠알렌보다 항체를 더 많이 유도하는 등 면역증강 효과가 더 뛰어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인공 합성한 스쿠알렌이 면역증강 원리를 밝히는 실험 재료로도 유용하다고 밝혔다. 상어의 스쿠알렌은 이미 여러 백신에 쓰이지만, 구체적인 면역증강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에 인공 스쿠알렌의 사슬 구조 길이가 길수록 면역반응이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심해에 사는 상어들은 간이 몸무게의 20~40%를 차지하고 그 대부분이 스쿠알렌이다. 백신 수요가 갑자기 늘면 면역증강제로 쓰이는 스쿠알렌을 구하기 위해 심해상어가 남획될 수도 있다./Pixabay

◇”전 세계 백신 접종, 50만 마리 희생 가능”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급증하자 인공 스쿠알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에 상어 스쿠알렌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상어 개체수가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어 보호 단체인 샤크 앨라이스(Shark Allies)에 따르면 스쿠알렌 1t을 채취하기 위해 상어 3000마리가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전 세계 78억 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을 1회 접종한다고 가정하면 상어 25만 마리가 사라진다. 백신 효과를 높이기 위해 2회 접종할 경우 희생되는 상어는 50만 마리로 늘어난다.

상어는 다른 어종보다 새끼를 적게 낳고 성장 기간도 길다. 스쿠알렌 수요가 갑자기 늘면 상어가 남획돼 한순간에 개체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꿀꺽상어(gulper shark)와 돌묵상어(Basking shark)처럼 간이 몸무게의 20~40%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스쿠알렌인 심해 상어가 큰 피해를 입는다.

폭스 교수는 합성생물학으로 스쿠알렌을 합성해 상어와 사람을 모두 구할 길을 연 것이다. 앞서 미국 켄터키대의 조셉 체펠 교수 연구진도 지난 2020년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cetific Reports)’에 역시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스쿠알렌을 합성해 생쥐에서 면역증강 효과를 확인했다. 체펠 교수는 에네프레트(Enepret)란 바이오기업을 세워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인공 스쿠알렌이 바로 백신 접종에 쓰일 수는 없다. 백신은 면역증강제와 짝을 이뤄 허가를 받기 때문이다. 인공 스쿠알렌을 면역증강제로 쓰려면 다시 백신과 함께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폭스 교수는 “인플루엔자나 또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대한 차세대 백신을 개발할 때 인공 스쿠알렌을 면역증강제로 쓰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 다른 실험동물로 전임상 연구를 진행해 안전성과 효능을 확증하겠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npj Vaccines. DOI: https://doi.org/10.1038/s41541-023-00608-y

Scientific Reports,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0-738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