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도입한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재건축 관련 규제를 대폭 풀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소외된 측면도 있지만, 서울시가 직접 선정해 컨설팅까지 해줬던 시범단지들도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다. 대다수의 단지들이 ‘인허가의 첫 단계’인 건축심의까지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리모델링 시범사업 단지 중 하나인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우성 1차 아파트/ 네이버 부동산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지정했던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단지는 총 7곳이다. 그 중 건축심의를 통과한 곳은 신도림 우성 1차와 2차, 3차 뿐이다. 나머지 송파구 문정시영, 문정건영, 강동구 길동 우성2차 등은 2~3년 전 1차 안전진단 통과 이후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리모델링 대어’로 불리는 중구 남산타운은 수년째 조합설립조차 안 되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 절차는 조합 설립 → 안전진단 → 건축심의 → 리모델링 허가 → 이주·착공 → 입주 순이다. 건축심의는 인허가의 첫 단계로, 건축심의를 통과하면 리모델링에 착수할 수 있다.

리모델링 시범단지 중 문정건영은 2022년 9월 도시계획심의 이후 진전이 없는 상태다. 문정시영 역시 2022년 11월 도시계획심의를 마쳤다. 각각 1차 안전진단은 문정시영이 2020년 10월, 문정건영이 2021년 4월로 수년 전 완료됐다. 길동우성2차 역시 2021년 11월 1차 안전진단을 통과한 이후 진척이 없다.

업계에서는 시범사업 단지 뿐 아니라 서울시내 조합을 설립한 총 76곳의 리모델링 사업장에서 건축심의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이유로는 리모델링 관련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리모델링 사업장에서 필로티(비어 있는 1층 공간) 설계에 따른 1개층 상향을 기존 수평증축이 아닌 수직증축으로 규정했는데, 수직증축을 하려면 까다로운 2차 안전성 검토를 추가로 거쳐야 해 사업지연이 필연적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도 2022년 건축심의에 적용하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운용기준’을 새로 내놓으면서 용적률 완화를 위한 인센티브 항목을 기존 7개에서 15개까지 늘린 바 있다. 최근 서울시는 이 항목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나섰다.

정부의 정책적으로도 리모델링 사업은 소외되고 있다. 신축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는데, 리모델링 제도 개선 방안 등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한 서울시내 리모델링 시범단지 조합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건축심의 전 사전자문 제도를 만든 이후 건축심의를 통과한 곳이 거의 없는데, 조합들 사이에서는 건축심의를 막으려고 사전자문을 만든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며 “큰 돈을 들여 서울시가 컨설팅까지 해 준 시범단지들마저 진행이 안 된다면 리모델링 정책을 거의 말살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리모델링 시범단지 7곳을 선정하면서 초기 사업 방향을 수립하는데 있어 컨설팅을 해주고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하는 등 각종 활성화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당시 진행했던 ‘박원순표’ 리모델링 정책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사업인 재건축을 밀어주기 위해 리모델링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던 시범단지들마저 속도가 나지 않자 업계 전반으로는 위기감이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리모델링 주택조합 협의회 관계자는 “시범단지의 경우 서울시에서 주민설명회까지 하면서 먼저 희망을 심어준 셈인데, 사실상 사전심의가 통과됐다고 볼 수 있는 이 단지들마저 속도가 나지 않는다면 나머지 사업들을 모두 막는다는 느낌이 든다”며 “리모델링 사업 단계마다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서울시 규제가 비용을 더 늘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