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에 사는 다주택자 최모씨(55)는 최근 갑자기 집을 비워야한다는 연립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 4억원을 돌려줘야하는 상황을 맞았다. 급하게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봤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에 막혀 3억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생활안정자금 대출을 받고 적금을 깨 나머지 비용을 마련했다.

최씨는 최근 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의 DSR 규제를 완화해준다는 소식에 ‘숨통이 트일까’ 기대했다고 했다. 역전세난 상황이라 전세보증금을 다음 세입자에게 받더라도 현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도 이미 꽉 찬 상태다. 최씨는 “나와 같은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문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더 높아진 탓이 크다. HUG에서는 지난달부터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100%에서 90% 한도 내로 변경한 바 있다. 전세사기를 방지하고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한때 임대인들은 DSR 규제만 완화된다면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쉽게 돌려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보증보험 한도 변경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일명 ‘전세가격 상한 기준’으로 여겨지는 보증대상 전세가율이 낮아져 전셋값도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집주인들이 돌려줘야할 전세금이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아직 전세 수요가 있는 아파트 시장보다 연립이나 다세대 등 비아파트 시장은 ‘전세포비아’로 수요도 없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에 집중하느라 임대차 시장에 미칠 부작용까지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기준 변경은 지난달부터 추진된 정책이기 때문에 당장 조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임대인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DSR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LTV 규제라도 함께 풀어줘서 임대인들이 대출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임차인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담보는 있지만 규제 때문에 대출을 못 받아서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경우는 최소한 없도록 해야한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의 몫이 된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소송을 걸어 해당 주택을 강제 경매로 넘길 수 있다. 경매로 넘어가더라 낙찰가가 전세보증금에 미치지 못하거나, 경매기간만큼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시간도 더 들어가게 된다.

물론 DSR과 LTV 규제를 모두 완화할 경우 가계부채 증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전세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 규제 완화는 가계부채 총량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들여다 봐야한다. ‘빚을 내서라도 전세금을 돌려주고 싶어하는’ 임대인을 위한 대출규제 완화도 현재 불안한 임대차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