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민들이 관할 구청과 지역구 의원실에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지정을 해지해달라”며 단체 행동을 예고했다. 올해로 4년째 묶이면서 재산권을 침해 받았다는 것인데, 이달 안으로 정식으로 항의 방문에 나서기로 했다. 압구정과 여의도 등 토허제를 적용 받고 있는 다른 지역까지 이러한 움직임이 번질지 관심이 쏠린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잠실 엘스와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주민들은 일단 현수막부터 내거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현재 엘스와 리센츠 아파트 외벽에는 ‘재산권 침해하는 토지거래허가제 즉각 해제하라! 잠실은 서울시의 제물인가?’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엘스 아파트 입대위 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그간 집값 안정화라는 국가 목표를 위해 인내해왔다”면서 “재산권 침해로 겪는 고통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외벽에 토지거래허가제 해제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제보자 제공

이들은 관련 법령을 근거로 잠실에 내려진 토허제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부동산거래신고법) 제10조 중 ‘토지의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지역’이라는 문구에 잠실이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은 520만㎡에 달하는 부지 전체가 2020년 6월 23일 토허제 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2차례 연장됐다. 올해로 총 4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셈이다.

사실 잠실이 토허제 구역으로 최초 지정됐을 때만 해도 ‘국제교류복합지구(잠실 MICE 사업) 사업대상지’로 선정되면서 ‘투기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이제 개발 기대심리로 인한 이익이 이미 실현됐고, 사업 속도가 나지 않아 재산권 침해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토허제 구역으로 지정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을 거래할 때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2년 이상 실거주 의무가 적용된다. 전세를 끼고 매수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특히 엘·리·트·레의 경우, 지난 2008년 준공돼 재건축 아파트가 아님에도 개발지역 인근이라는 이유 만으로 토허제로 묶인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잠실 일대는 토허제로 묶인 후 거래량이 급감했다. 송파구에 따르면 지난해 잠실동 부동산 연간 거래량은 총 911건으로, 토허제 지정 전인 2019년(2705건)과 대비해 약 34% 감소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엘스 아파트 외벽에 토지거래허가제 해제를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제보자 제공

압구정‧양천구 목동 등은 투기 우려가 있는 재건축 단지 만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데 반해, 잠실은 이미 재건축이 완료된 단지까지 포함된 전역을 묶어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로 주택을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데도 토허제에 묶여 크게 손해를 보거나 팔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게 주민들 주장이다. 잠실동 리센츠의 한 소유주는 “지난해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가격이 터무니 없이 낮아져 매물을 거둬들였다”면서 “전세가격이 급락해 5억원을 낮춰 새로운 세입자를 들였다”고 했다.

타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서초구 반포동과 용산구 한남동 등은 현재 토허제로 묶여 있지 않아,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반포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200㎡ 분양권은 100억원에 팔렸고, 전용 84㎡는 지난달 14일 39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이에 엘·리·트·레 주민들은 이달 말 토허제 지정 만료를 앞두고 서강석 송파구청장과 지역구 의원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항의 방문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입대위 소속 주민은 “애초 공약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피력해 주지 않고 있다”면서 “송파구 내에선 잠실동만 토허제 구역으로 잡혀 있다”고 했다.

잠실 외에도 토허제가 적용된 지역의 주민들도 불만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토허제가 1년 연장된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에서도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와 형평성 문제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압구정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용산 한남동, 서초 반포동 등과 형평성 문제로 다들 불만이 많다”면서 “전세 가격도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라 갭투자도 쉽지 않은데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앞서 강남구는 지난달 대치·삼성·청담동 일대 9.2㎢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기간 만료일을 앞두고 서울시에 해제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1년 이상 뚜렷한 안정세를 유지하는 등 토허제 지정이 부동산가격 안정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며, 국토교통부의 허가구역 조정에 대한 정량지표(최근 3개월 지가변동률, 누계 거래량 분석)와 정성지표(허가구역 지정 실익) 모두 안정에 해당돼 이미 해제 요건을 충족했다는 주장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허제 지정 및 연장은 그동안 정비사업으로 인한 일부 지역의 시장이 불안했던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당위성이 있었다”면서 “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막연하게 연장을 지속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