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민들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A(GTX-A) 노선 사업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은마아파트 밑을 지나가는 GTX-C 노선 사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GTX 사업을 추진하는 국토교통부의 손을 들어준 만큼 우회설계안을 요구하는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주장에 힘이 빠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아래 암반의 강도나 공법 등을 고려했을 때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GTX-C 삼성역~양재역 구간이 단지를 관통하지 않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지하로 GTX가 통과하면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역을 직선으로 연결하거나 탄천 방향으로 우회하도록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토부는 2014년부터 기술·법률 검토를 거쳐 선정된 노선이라며 원안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인 은마 아파트./조선DB

은마아파트재건축추진위원회는 직접 설계용역 업체를 선정해 직진 노선과 탄천 우회 노선을 설계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대안 노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GTX-C노선은 경기 북부 양주 덕정역과 경기 남부 수원역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도봉구 창동과 청량리, 왕십리와 삼성, 양재 등 강남·북 도심을 관통한다.

국토부는 원희룡 장관이 직접 나서 은마아파트의 우회안 요구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은마아파트 주민 일부가 GTX-C노선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이 우회안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원 장관은 지난해 11월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한 국가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했고, 12월에는 서울시와 합동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은마아파트 주민들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하 60m 암반층 아래에서 진행되는 대심도 터널 공사가 지상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첨단 기술을 동원, 발파 없는 TBM(터널보링머신) 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해 소음·진동에 따른 안전성 우려는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창용 건설기술연구원 도심지하교통인프라연구단장은 “강남구는 30m 아래만 되어도 암반층이 단단하게 있어 상당히 안전한 축에 속한다”면서 “단적으로 롯데월드타워가 지어진 잠실은 과거 섬이었지만 아래 8호선이 지나가는 데도 큰 문제가 없지 않냐”고 했다. 이어 “국가에서는 공공성을 우선하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고 주민들에게 이를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500만명의 수도권 인구가 이용할 GTX는 2009년부터 최고의 권위를 가진 공공·민간기관들이 연구를 해왔다”면서 “경부고속도로를 짓는 데 우리집 근처에서는 우회해 달라는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한편 지난달 16일 서울행정법원 제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청담동 247명이 2019년 제기한 민간투자사업 실시계획 승인 처분 등 취소 소송 1심 재판에서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GTX-A 노선은 당초 압구정 한 아파트 단지 밑을 지나기로 했다가 청담동 고급 빌라 및 아파트 단지 아래를 통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주민들은 이 변경 처분 절차가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파트를 재건축 할 때 지하주차장 공간까지 고려해 무리 없는 정도라면 상식적으로 공공재인 GTX 공사에 우회안을 요구하는 것이 받아 들여지긴 어렵다”면서 “이번 청담동 GTX-A노선 관련 소송 결과로 향후 법정분쟁으로 번진다 하더라도 국토부 쪽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