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라고 하죠. 월세가 비싸도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직장인 김명준(27)씨는 지난 2021년부터 1년간 서울 은평구의 한 코리빙 하우스에서 살았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80만원. 인근 원룸이나 오피스텔 시세에 비해 매우 비싼 편이었지만 크게 만족했다고 했다. 카페와 라운지, 홈 시네마, 헬스장 등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공용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과 봉사활동도 다니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으로 김씨는 현재도 공유 커뮤니티 시설이 있는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코리빙 하우스 '홈즈컴퍼니'의 공유 라운지 전경. /홈즈컴퍼니 제공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2030 위주로 공유 주거라는 새로운 형태가 주목받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공유주거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공유 주거 숙박시설인 코리빙 하우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코리빙 하우스란 건축법상 임대형 기숙사로 분류되는 공동 주거형태다. 화장실과 개인 방은 따로 쓰도록 해 기존 쉐어하우스의 단점을 보완하고 공용 라운지나 주방 등 커뮤니티 시설을 다양화해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코리빙 하우스를 찾는 이유는 주거에서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SK D&D가 월드와이드코리빙멤버십(WCM)과 함께 WCM 5개 회원국(한국·일본·스페인·필리핀·호주)의 코리빙 입주자 4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1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리빙 입주자들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전체 응답자의 78.8%가 코리빙에서 제공되는 공간, 커뮤니티를 통한 취미 활동 등의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고 답했으며, ‘비용 절감 효과’(57.6%)에 대한 기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코리빙 하우스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관련 스타트업에는 ‘부동산 머니’가 몰리고 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홈즈컴퍼니’는 영국계 자산운용사 ICG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코리빙 관련 프로젝트에 최대 3000억원을 투자한다. 이 자금으로 홈즈컴퍼니는 호텔 등 도심 건물과 토지를 매입해 리모델링 및 개발 후 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를 운영하는 엠지알브이는 125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맹그로브는 서울에서만 세 개의 코리빙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4호점인 신촌점을 오픈했다.

대기업도 코리빙 하우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KT에스테이트는 야놀자클라우드와 합작한 법인 ‘트러스테이’를 통해 다음달 양천구에 코리빙하우스 ‘heyy(헤이)’ 신정동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군자점과 미아점을 각각 열었고 서울 곳곳에 지점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SK D&D는 성수·서초·강남 등에서 코리빙하우스 ‘에피소드’를 총 3800실 운영 중이다. 2026년까지 서울 시내에 5만실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코리빙 하우스 '콜렉티브'의 일광욕실(Sun room) 전경. /콜렉티브 웹사이트 캡처

해외에서 코리빙 하우스는 이미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고급 주거 문화를 이끌고 있는 트렌드다. 미국의 대표 코리빙 업체인 커먼(Common)은 젊은 전문직을 타깃으로 운영하는 고급 코리빙 하우스다. 현재 미국 뉴욕과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등 10개 지역에서 코리빙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곳 주민은 공유주거 시설 내 모임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고, 미국 전역에 있는 다른 지점의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영국의 콜렉티브(Collective)는 개월 단위뿐만 아니라 일 단위로도 코리빙 하우스를 운영해 시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런던에 두 곳, 미국 뉴욕에 한 곳 등 3곳의 지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코리빙 하우스는 자산보다는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할 수 있는 유형의 주거형태”라면서 “입지가 좋고 여러 지원 시설이 있어 주거의 질을 중시하는 젊은층에게 특히 각광받을 것”이라고 했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전무는 “요즘 MZ세대, 특히 1인 가구 중에는 ‘내가 사는 공간이 곧 나’라는 인식이 있는 데다 소셜 미디어(SNS)에 내 공간을 찍어 올릴 수 있는 멋진 공간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직장도 자주 옮기고 재택근무가 많은 이 세대 특성 상 모빌리티(이동성)가 좋은 주거시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