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값 하락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경기 이천의 집값은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투자 등으로 일자리가 늘어난 영향이다.

20일 한국부동산원 10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수도권에서 아파트값이 오른 곳은 이천(6.47%)과 여주(1.39%), 안성(0.13%) 세 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이 3.87%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중 이천의 경우 전국 시·도 중에서도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전국에서 이천 다음으로 집값 상승률이 높은 강릉(4.20%)과의 격차도 2%포인트를 넘어선다. 3~4위는 군산(3.9%)과 마산합포구(3.41%)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SK하이닉스 공장 정문. 뒤로 보이는 건물이 M16 공장./정재훤 기자

이천 집값 상승률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에서도 1위를 차지한 배경에는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가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작년 2월 경기 이천시에 대규모 반도체 팹(Fab·공장)인 M16 공장을 지으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미 3조5000억원이 투입됐으며, 추가 투자 규모는 20조원에 육박한다.

SK하이닉스의 투자로 취업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천의 15세 이상 인구수 대비 고용률은 68.4%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전국 62.9%, 경기도 60.9%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SK하이닉스가 2026년까지 6만명 이상을 고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취업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역으로 묶였던 경기도에서 꾸준히 비규제지역 상태를 유지했던 점도 매수수요가 늘어난 원인이다. 이천은 동쪽으로는 여주, 서쪽으로는 용인·안성, 북쪽으로는 경기도 광주시와 맞닿아있는데 이 중 올해 상반기까지 규제지역이 아닌 곳은 여주 뿐이었다. 다만 정부가 9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규제지역을 대폭 해제하면서 현재는 네 곳 모두 비규제지역이 됐다.

일자리 호재와 비규제지역 효과에 힘입어 이천 집값은 올해 상반기까지 급등했다. 하반기들어 조정기에 들어섰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많이 올라 있는 상태다. SK하이닉스 공장을 통해 유입되는 실수요가 탄탄해 집값 변동폭이 크지 않다는 게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례로 SK하이닉스와 OB맥주 등 대기업 공장과 가까운 곳에 있어 이천의 ‘강남’으로 불리는 안흥동 ‘롯데캐슬골드스카이’는 지난 8월 전용 84㎡짜리가 6억8000만원에 계약됐다. 작년 8월 6억1900만원에 계약된 것과 비교하면 10%가량 오른 가격이다.

아파트단지가 밀집돼있는 갈산동 ‘힐스테이트’의 경우 지난 5월 전용 85㎡짜리 아파트가 5억500만원(9층)에 팔렸는데 1년 전 동일면적 거래가격 4억원(9층)보다 1억원가량 올랐다. 인근 단지인 ‘설봉1차푸르지오’도 전용 148㎡짜리 아파트가 지난 7월 6억9800만원(6층)에 팔리면서 작년 3월 거래가격 5억6800만원(5층)과 비교해 1억원 넘게 올랐다.

이천 시내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 영향으로 예전만큼 거래가 잘 되지는 않지만, SK하이닉스 공장 인근 아파트는 70%를 넘는 전세가율이 든든하게 집값이 받쳐주고 있어 하락 폭이 크지 않다”면서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장에 고용한 인원이 늘어나면 매수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전세나 월세수요도 다른 지역보다는 많아 집을 매수하면 세입자가 잘 맞춰지는 편”이라면서 “물론 전·월세를 내놓기 무섭게 임차인을 찾을 수 있었던 올해 초와 비교하면 전셋값과 임차수요가 줄어 임차인을 구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재까지 지속된 집값 상승세가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근에 중리택지지구 등 신도시 조성이 예정돼 공급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천시청과 경찰서 등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중리동에는 앞으로 택지개발을 통해 LH 임대주택 658가구, 일반분양 3173가구 등 총 4472가구가 내년 분양을 시작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이천 집값이 오른 원인 중 하나는 수요대비 부족한 공급이었다”면서 “특히 올해 아파트 입주물량이 전혀 없어 집값이 많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택지개발 등 공급물량 증가가 예상되고, 집값도 이미 많이 오른 상태라 상승보단 보합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