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꺾이면서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값이 먼저 약세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부동산R114가 산출한 올해 1~8월 누적 서울 아파트의 연식별 매매가격 변동률을 보면 입주 1~5년차 신축 아파트 값은 0.5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입주 6~10년차 준신축은 0.86%, 입주 10년 초과 구축은 0.69% 각각 올랐다.

이는 지난 수 년동안 ‘불패’라고 할 만큼 신축이 강세를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는 투자수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재건축 아파트의 하락세가 더 두드러진다는 통념과도 맞지 않는 현상이다.

왜 신축 아파트부터 하락세를 타는 걸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지난 3일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적혀 있는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가격표/뉴스1

① 신축 2년차 매물들이 쏟아진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신축 2년차 아파트 매물이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응암동 녹번역e편한세상캐슬(2569가구)의 올 9월 거래 가능한 매물(중복 반영)은 87~103개 수준이다. 2년 전인 2020년 9월만해도 매물 수는 10개 수준에 불과했다.

올해 입주 2년차를 맞은 과천시 중앙동의 과천푸르지오써밋(1571가구)은 2020년 9월 한달간 9~13개(중복매물 감안) 수준의 매물이 나왔지만, 2022년 9월엔 54~68건으로 늘었다.

입주 2년 후 집을 파는 사람이 많은 것은 1가구 1주택의 경우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실거주 2년 채운 경우가 많아서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2년이 지난 이후에도 그대로 거주하려는 사람이 상당히 있지만, 하락기가 되니 팔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보유기간을 최소한만 채우고 차익실현을 하려는 매도물건이 나온 영향이 있다”면서 “집값은 토지가격과 건물가격으로 구성되는데 신축일 수록 건물가격이 높기 때문에 차익실현을 하려는 사람들은 신축 아파트부터 매물로 내놓는 경우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② 갭투자자의 실종

갭투자자가 자취를 감춘 것도 신축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이유다. 갭 투자자란 매매가에서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으로 주택을 매수하는 이들이다. 갭투자는 집값이 급격하게 오를 것을 기대할 때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기 위한 투자방법이다.

통상 갭투자자들은 신축 아파트를 선호한다. 거주환경이 좋다는 점 때문에 전세가격이 높은 편이라 투자자금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용면적 59㎡짜리 신축 아파트가 10억원이고 전세입자가 보증금 6억원에 계약을 맺고 있으면 매수자는 4억원만 융통하면 된다. 하지만 바로 옆단지 20년차 재건축 호재가 있는 아파트의 전용면적 59㎡의 값이 11억, 전세보증금이 3억인 경우 8억원을 융통해야 한다. 자금조달 부담이 클수록 신축 아파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 금리 상승에 따라 집값이 단기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뚝 떨어지면서 갭투자에 나서려는 이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가 전주(85.9)보다 낮은 84.8로 집계됐다. 2019년 10월 둘째 주(84.8) 조사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73∼7.14%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조만간 주택담보대출 상단금리가 연 8%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취득세 규제도 여전하다. 조정대상지역에서 2주택을 취득하면 8%의 취득세를 부담해야한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취득세가 8%라고 하면 집값이 8%가 더 올라도 이익을 볼 수 없다는 뜻이고, 기준금리가 계속 높아진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현재로선 갭투자에 나설 이유가 많지 않다”면서 “갭투자자가 가장 선호하는 신축 아파트값부터 빠지는 이유”라고 했다.

③ 분양권 투자자의 매각 행렬

공격적으로 분양권 매수에 나섰던 투자자가 입주 시기에 전셋값 하락으로 버틸 여력이 없어지며 파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신축 아파트 값이 떨어진 이유다. 잔금을 치를 여력이 없는 소유주들이 헐값이 주택을 매도하는 경우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2016~2017년 분양을 받은 사람은 자기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마포구 신수동 ‘신촌숲아이파크’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는 2016년 분양 당시 전용 84㎡가 최고 8억1500만원에 분양됐다. 2019년 8월 준공 당시 전세가격은 6억4000만~7억원이었다. 자기자본 1억5000만원 정도만 있으면 새 집을 가질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19~2020년 분양받아 올해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는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세시장 분위기가 꺾이면서 전세가격이 내리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입주가 몰리며 지역 전반의 전세금이 내린 수원 망포의 경우 입주가 진행 중인 아파트의 보유를 포기하고 분양가보다 싼 값에 물건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를 예정이었는데 불가능해졌고, 당분간 오르기도 어렵다는 판단에 손해를 보고 정리에 나선 경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집값 상승기의 마지막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사람들이 난관에 빠졌다”고 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공동주택을 다수 건설한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프리미엄까지 주고 분양권을 산 사람들은 전세입자를 구하고도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단기간에 집값이 오르면서 분양가와 전세가격이 같아진 일부 사례를 믿고 무리한 사람들 물건이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나오고 있어 시장 분위기가 더 안 좋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