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 고양시의 준공 26년차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 “공약한 대로 규제를 풀어주면 될텐데 마스터플랜을 2024년까지 내놓겠다고 하니 아파트 나이가 50살은 되어야 삽을 뜰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든다”면서 “결국 여의도나 목동 아파트가 지나온 길을 걷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오는 2024년까지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자, 빠른 재건축을 기대했던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실망이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정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 대한 입장이 여러 번 바뀌자 정책의 신뢰성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기 분당 1기 신도시 서현 시범단지 삼성·한신 아파트 모습. /조선DB

◇ 사실상 중·장기 과제 된 ‘1기 신도시 재정비‘

정부는 전날(16일)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하며 “올해 하반기 중 연구용역을 거쳐 2024년까지 도시 재창조 수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연말쯤 마스터플랜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또 계획이 늦춰진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기 신도시는 워낙 대규모이고 같은 시기에 지어진 단지가 밀집된 곳이기에 질서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1기 신도시는 준공 후 30년이 경과된 노후 단지들이 밀집돼 있어 주거 환경 개선, 광역 교통 및 기반 시설 확충 등 종합적인 도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기 신도시는 1989년 개발계획 발표 후 1992년까지 432개 단지, 29만2000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오는 2026년이면 모든 단지가 입주 30년을 넘기게 되는데, 평균 용적률이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등으로 높은 편이라 분당과 일산을 제외하면 재건축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1기 신도시 재정비를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당선 이후부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4월 돌연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공약 번복’ 논란이 불거지자 인수위는 “당선인의 공약은 계획대로 진행 중으로, 조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번복했다.

이날 정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에도 적용되는 구조 안정성 비중도 손보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50%까지 높아진 구조 안전성 비중을 30~4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인 박근혜 정부 때는 건물 내구력을 평가하는 구조 안전성 비중이 20%로 낮아지고, 주거환경 비중이 40%까지 높아진 바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정부의 첫 주택공급대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현 정부에선 1기 신도시 재정비 힘들 것”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 발표가 내후년으로 밀리자 주민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경기 분당 신도시의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마스터플랜이 나오지 않으면,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은 사실상 어렵다”면서 “마스터플랜을 발표한다는 2024년까지 2년이란 공백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모르겠다. 사실 2024년도에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될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정부가 구조 안전성 비중을 기존 50%에서 30~40%으로 낮추겠다는 것과 관련, 이 관계자는 “구조안정성 비중 30~40%도 사실 높은 편이다. 이 기준으로는 분당 아파트 상당수가 재건축을 추진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 때처럼 구조안전성 비중을 확 낮추고 주거환경 평가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경기 일산 신도시의 한 재건축추진위원회 관계자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은 단순히 아파트 단지 하나를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전체 도시의 기반시설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정부가 조심스러워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면서 “다만 다른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할 때는 몇십 몇백만 가구를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왜 1기 신도시 재건축 관련해서만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은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1기 신도시 정비업계 관계자는 “주민들이 윤석열 정부에 표를 준 것은 문재인 정부와 달리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당선 후 1기 신도시에 대한 입장이 계속 바뀌고, 이번 주택공급대책에서도 후순위로 밀리면서 윤 정부도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는 거 같다는 평가가 주민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속도를 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 아파트가 밀집된 1기 신도시 지역에서 동시에 다수의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이 주수요 등을 감안했을 때 불가능하다”면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위해선 최소한 어떤 순서로 정비사업을 진행할지라도 정해져야 하는데, 마스터플랜이 2024년도에 나오면 이번 정부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이 가시화되긴 어려울 거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