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 A씨는 요즘 단지 내 새로 생긴 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된다고 했다.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는데 교회가 단지 상가에 들어오면 멸실 협상이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군데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파행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상가, 학교, 교회 등과 겪는 문제로 전 재산을 건 사업이 망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조선DB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소유주들이 서울 성북구 장위 10구역에 주목하고 있다. 장위 10구역에 속한 사랑제일교회가 결국 500억원대에 이르는 보상금을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장위 10구역은 사랑제일교회와 보상금 문제로 오랜 시간 갈등을 빚어왔다. 만약 이번에 장위 10구역이 사랑제일교회가 요구한 보상금을 전부 주고 사업을 추진하면 법원 판결을 무력화 시킨 것과 같다. 종교시설을 포함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보상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장위 10구역은 이달 중 개최할 총회에서 사랑제일교회에 500억원대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안건에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총회에 안건을 올린다고 해서 무조건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장위10구역은 이 내용을 총회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번엔 대의원 회의를 거쳐 총회에 올리고 일단 조합원 뜻을 묻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장위 10구역은 서울시 토지수용위원회 감정평가에 따라 종교 부지를 제공하고 약 82억원의 보상금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563억원을 요구했다. 보상액에 대한 갈등이 좁혀지지 않아 소송도 오랜 기간 진행됐다.

소송 결과는 장위 10구역의 승소였다. 조합은 사랑제일교회를 상대로 명도 소송을 제기했고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조합이 승소했다. 하지만 명도 집행 때마다 신도 등의 반발이 커지면서 집행을 못했다. 결국 조합은 교회 부지를 제척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교회가 부지 한 가운데 있는 점 등이 문제였다.

장위10구역의 한 조합원은 “사랑제일교회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냥 사업을 빨리 진행하자는 의견이 있어 다수 의견인지를 확인하는 취지로 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빠른 사업을 원하지만, 의견이 다른 조합원도 있다”고 했다.

사랑제일교회 한 교인은 “교회를 제외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비용을 지불하고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면 적정가치를 지불해야 한다”면서 “장위동에 이 정도 규모 교회를 80억원 수준으로 사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고 이것이 감정평가라면 기준이 잘못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비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선례가 만들어지면 앞으로 보상금을 감정평가대로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법원 판결도 결국은 무력화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법원 판결과 달리 종교시설의 요구대로 보상이 진행되어 버리면 개발 사업에서 알박기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지금까지 객관적인 감정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여러 사업이 진행돼 왔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종교시설 처리방안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관행을 최대한 인정해주고, 언제부턴가 이에 따라 종교시설 보상이 이뤄지면서 생긴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다.

서울시 지침에 따르면 종교시설 존치를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하게 이전할 때는 기존과 같은 면적의 용지(대토)를 제공하고 기존 건물 연면적에 상응하는 건물 신축비, 종교 물품 제작 설치비, 사업 기간에 사용할 임시 장소, 종교시설 이전비 등을 모두 조합이 마련하거나 부담해야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서울시 지침이 같은 면적의 용지를 제공한다는 내용만으로도 종교시설에게 유리한 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보상의 기준은 감정평가다. 개발 전후의 토지값이 다른데 같은 면적의 대지를 제공하는 것은 개발 이익을 종교시설에 고스란히 안겨주는 결과가 된다. 조합원들의 경우 기부채납 등으로 개발이익을 전부 가져가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법원에서 종교시설 소송에서 도시정비법의 규율 체계에 별 문제가 없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데도 실질적으로 지침이 되는 서울시 가이드라인이 지금과 같다면 갈등을 더 키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