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경기도의 한 신축 아파트 현장 19층. 2인 1조로 벽지 도배를 하던 김모씨(53)는 한참 동안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다른 작업자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면서 배를 움켜쥐고 1층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근처에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1층에 마련된 임시 화장실이나 커뮤니티 시설 내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김씨는 “19층에서 배를 부여잡고 계단을 뛰어내려가는데 안타까웠다. 나도 종종 겪는 일”이라고 했다.

경기도 화성의 한 신축 아파트 천장에서 인분이 나온 것을 둘러싸고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건설 현장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아파트 천장에 인분을 묻은 것은 잘못이지만, 화장실이 부족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터파기 등 기초 공사를 할 때보다도 골조 공사 이후가 난관이라고 한다. 뼈대가 완성된 초고층 아파트의 경우 건물 내외부를 치장하는 마감공사에 많은 근로자가 고층 건물 곳곳에 투입된다. 그러나 고층부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곳이 사실상 많지 않다.

강남구의 한 건설현장 관계자는 “임시 화장실을 지상 곳곳에 설치해뒀지만, 공사용 엘리베이터만 구동되는 상황에서 자재라도 실려있으면 사용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건물에서 내려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다시 올라가는 건 더 힘드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고 했다.

7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아트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모습으로 기사와 무관함./뉴스1

◇ “건설현장 화장실은 태부족”

통상 건설현장에서는 아파트 2~5층 마다 한 곳에 소변통을 설치해둔다. 대변까지 처리할 임시용 화장실을 설치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지상 곳곳에는 임시 화장실이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아파트 층마다 있는 소변통을 활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소변을 볼 때도 지상의 임시 화장실로 내려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물이나 커피 등은 피하게 된다. 공사를 진행하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지면 작업 속도가 늦어질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없이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노동자 A씨는 “점심식사 이후 공사가 재개될 때는 다같이 공사용 엘리베이터 한 대를 타고 올라가지만 공사 중에는 자재를 한참 이동시키는 중인 경우 계단으로 걸어 내려올 수밖에 없다”면서 “점심 식사하면서도 웬만해선 물을 안 마시려고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건설노조도 공사 현장의 화장실 부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8일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건설 현장 23곳을 조사한 결과 현장당 평균 172명의 노동자가 투입되는 데 평균 화장실 개수는 2.5개, 세면장 개수는 1.7개라는 것이다. 노조 주장에 따르면 그 상태도 열악하다. 이동식 화장실에 주로 쓰이는 `거품형 포세식 좌변기(쪼그려 앉는 모양의 변기)’만 있는 현장이 8곳(34.7%), 의자처럼 앉는 포세식 양변기만 있는 화장실은 8곳(34.7%). 거품형 포세식 좌변기와 양변기가 섞여있는 현장이 7곳(30.4%)이었다.

일각에서는 가구 내의 화장실을 쓰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수전이 연결되면 가구 내 화장실 사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시공사에서는 이를 현장 근로자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파손이 될 우려가 있는데다, 수분양자가 항의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건설사는 아예 양변기를 비닐로 싸서 설치해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에 수전이 연결되지 않았을 때 양변기를 설치했더니 소변이 너무 오래 고여있어 양변기 자체가 노랗게 찌들고 결국 수분양자의 항의가 있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를 사용하게 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설비가 갖춰지는 시점은 공사의 마무리 시점이라서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들이 7월 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건설현장 화장실 및 편의시설 개선 촉구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 허술한 화장실 설치 기준… “작업자 인식도 문제”

화장실이 부족한 일차적인 원인은 건설사의 관심 부족이다. 여기에 건설현장의 화장실에 대한 기준이 허술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7월 건설 현장 화장실·식당·탈의실 설치를 규정한 ‘건설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서 세면·목욕시설과 화장실 설치운영 지침을 발표했다. 공사 예정 금액이 1억 원 이상인 건설 공사 현장은 남녀를 구분해 탈의실과 화장실을 갖춰야 한다. 대신 사업주는 세면·목욕시설과 화장실 설치 비용으로 최대 2000만 원까지 지원받거나 10억원까지 정부융자를 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은 공사현장에 따른 화장실 갯수 등 세부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허점이 있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건설근로자법 시행규칙에 각 편의시설 세부기준을 마련할 것을 2020년 정부에 권고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노조는 “아파트 1개 동 건설 현장마다 휴게실·탈의실·샤워실 1개를, 공사 중인 아파트 층마다 화장실을 설치하게 하고, 이 내용을 반영해 법률을 개정해달라”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한편 이번 인분 아파트 사고에는 공사 현장책임자의 태업, 건설 노동자 당사자의 인식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파트 현장은 2~3동마다 담당자가 지정돼 있는데, 이 담당자가 부지런히 관리·감독하는 경우엔 건설 노동자의 기행이나 비행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화성시 신축 아파트의 경우 시공사 현장 담당자의 실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주기적으로 관리·감독을 잘 해도 현장 노동자들이 신경써서 마감을 하게 되는데, 현장에 얼굴도 잘 비추지 않으면 아무래도 긴장이 느슨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작업자 인식이나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건설현장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위생에 대한 개념이 다르고, 화장실 안내에 대한 숙지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건설현장 노동자 B씨는 “마감 단계에서 천장에 인분을 넣어두는 행위는 다분히 악의적인 것인데 현장소장에 대한 악감정에서 나온 비행일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인식 차이 때문에 생긴 일일수도 있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건설현장에서 교육을 많이 받고 있는데, 위생 관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본다”고 했다.

나경연 건설기술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목의 경우 현장 규모가 매우 넓을 수 있다는 점, 공동주택 고밀화 추세를 감안했을 때 현장 내 이동이 어렵다는 점 등을 두루 감안해야 한다”면서 “건설현장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모두 감안해서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소한의 근로환경을 보장해야 하므로 지금부터라도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이 모두 손발을 맞춰야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