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정비계획변경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해 사업에 속도가 나길 기대했던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사업이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국유지에 지은 신천초를 조합 측이 보유한 부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신천초 부지의 처리 방법을 놓고 서울시와 교육청 사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서울시는 새로 학교가 들어서는 부지와 기존 신천초 부지를 교환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지를 교환할 경우 조합이 별도로 기부채납할 필요가 없어 정비계획안에서 확정된 임대주택 등 공공기여를 줄이지 않아도 된다.

반면 교육청은 국유재산법상 교환이 불가능하며, 조합이 신천초 부지도 매입하고 새로 지을 학교 부지도 기부채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청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기부채납이 늘어나는 만큼 정비계획안의 대폭 변경이 불가피해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 기존 신천초 부지↔신규 학교용지 교환 놓고 입장차… 서울시 ‘가능’ vs 교육청 ‘불가’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최근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조합에 보낸 공문을 통해 신천초 부지와 이전될 새 부지를 교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국유재산법상 국가는 교환한 재산을 행정재산으로 관리할 경우에만 사유재산과 교환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청 사무에 속하므로 국가의 행정재산이 아닌 지자체 소유 자산이다. 결국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해석이다. 교육청은 이 공문에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물론 교육부의 의견까지 취합한 결과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

조합 측은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국유지인 신천초 부지를 학교 2개소가 지어질 조합 사유지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기부채납 규모를 줄였다. 신천초 부지 규모가 1만4414㎡, 신설 학교 부지 규모가 1만6000㎡이므로, 교환 방식을 따를 경우 조합이 기부채납할 부지는 1586㎡ 수준이었다. 초등학교와 별개로 당초 조합 측이 기부채납하기로 한 중학교 부지 8000㎡를 포함하면 총 1만여㎡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의 요구대로 할 경우 신천초 부지를 주택용지로 활용하려면 조합 측이 해당 용지를 직접 매입해야 한다. 학교가 이전될 새 부지는 그대로 조합이 교육청에 기부채납해야한다. 이 경우 조합이 기부채납할 부지는 기존 1586㎡에서 1만6000㎡으로 늘어나게 된다. 중학교 부지와 합치면 총 2만4000㎡다.

문제는 이처럼 기부채납하는 부지가 늘면 공공주택 가구 수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조합이 사업장 내 부지를 기부채납할 경우 기부채납된 토지의 자산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공공주택 수를 줄일 수 있다. 지자체가 조합 측에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신규 부지를 기부채납하게 되면 해당 부지의 가액만큼 공급되는 공공주택 수가 정비계획안에 명시된 611가구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공공주택 공급을 주요 정책 목표로 설정한 서울시 입장에서는 교육청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새 학교가 들어설 부지를 두고 기부채납을 원하는 교육청과 공공주택을 원하는 서울시 측의 줄다리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계획을 결정하는 주체는 서울시장이지만 현재 부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교육청 간 이견이 있는 상태”라면서 “교육청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 사업지연 시 조합 피해 불가피… 주민들 “행정심판 제기할 것”

두 기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4000명이 넘는 조합원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만약 교육청의 주장이 맞는다면 정비사업계획을 변경하는 절차를 또다시 밟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 상당 기간의 시일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조선DB

잠실주공5단지는 전체 393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재건축을 통해 총 6815가구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996년부터 재건축 사업이 추진됐으며, 2014년부터 정비계획안 변경을 위한 서울시 심의와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학교 이전 문제로 번번이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작년 초까지 7년째 사업이 멈춰있었다. 작년 8월에야 가까스로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고 지난달 고시까지 마쳤는데, 부지 문제가 다시 또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한 조합원은 “서울시의 요구대로 학교 부지를 국유지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교환이 안될 수 있다고 하니 걱정스럽다”면서 “몇년째 학교 부지를 두고 서울시와 교육청 쪽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다투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일부 주민은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와 교육청의 이권다툼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해달라는 취지다. 나아가 주민들은 교육청이 요구하는 2만4000㎡의 학교 부지와 서울시가 요구하는 공공주택은 기부채납 법정상한을 초과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심판을 준비하는 한 주민은 “주민들은 앞서 한 차례 심판을 제기한 바 있는데, 행정심판은 고시가 나온 이후에만 제기할 수 있어 각하됐다”면서 “고시가 나온 만큼 다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두 기관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 행정적·법적 절차를 밟게 되면 상당한 시일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 기간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만큼, 두 기관이 조속히 협의를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