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 집 마련을 꿈꾸던 강모(32)씨는 지난 2019년 서울에 집을 마련했지만 정작 3년째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 대출규제 강화로 잔금을 치르지 못해 전세를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강씨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월세로 거주하면서 서울 집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고 있다.

#2. 회사원 김모(40)씨는 요즘 대출을 받아 살 수 있는 집 목록을 적으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하지만 좌절감은 어찌할 수 없다. 모아둔 돈으로 예전엔 서울 외곽에라도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하면, 이젠 경기도 중에서도 변두리로 빠져나가야 겨우 집 한 칸을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집값을 잡겠다고 대출규제를 수 차례에 걸쳐 손봤지만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무주택자와 1주택자. 무주택자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사다리를 뺏겼고, 1주택자도 생애주기에 따른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게 생겼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는 최근 집값 상승의 주범도 아닌데 부동산 대책 여파로 피해만 보고 있다고 토로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주택대출 한도가 줄어든 가운데 2019년 12월부터는 조정지역 내 시가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이 전혀 불가능해지면서 현금부자만 서울 핵심 주거지에 진입하게 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뉴스1제공

◇ 집값 급등했는데 대출길은 더 줄어… 무주택자, 집 사는 건 언감생심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현대아파트. 가재울 뉴타운이 생기면서 한 때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던 아파트 단지다. 인근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거 환경이 좋아졌는데, 지어진 지 오래된 편이라 값이 상대적으로 쌌다.

이 아파트의 전용면적 84㎡는 2017년 5월에 4억7500만원에 거래됐다. 당시엔 현재 대출 기준(LTV 40%)으로 융자를 받는다고 해도 2억8500만원 정도를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그렇지 않다. 최근 이 아파트 같은 면적 주택의 호가는 11억원. 실거래가는 9억9500만원(3월 21일)이다.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최대 4억1900만원. 신혼부부가 목돈으로 5억7600만원은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젊은 층에서는 양가 부모 도움없이는 집을 마련해 결혼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예비 신부인 김모(29)씨는 “부모님께서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오히려 은퇴를 앞둔 부모님에게 내가 용돈을 드려야 할 상황”이라면서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2월 국토연구원이 만 20~39세 미혼남녀 30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주택 미혼 청년의 77%는 내 집을 꼭 소유해야한다고 응답했지만, 본인의 소득과 자산을 고려했을 때 10년 이내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청년은 42.6%에 그쳤다. 10년 이내에 내 집 마련이 어렵다고 대답한 이들의 60.3%는 일반 전월세 주택, 37.6%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집값이 뛰고 대출길이 막히면서 무주택자들이 내집을 마련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도 길어졌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애 최초로 주택을 마련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2017년 6.8년에서 2020년 7.7년이 됐다.

조선DB

◇ 막혀버린 갈아타기의 꿈… 1주택자 “이 집 팔면 같은 집도 못 산다”

1주택자는 무주택자보다 상황이 낫다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결혼·출산 등 생애주기에 따라 큰 집이 필요해지는데 그 길이 거의 막힌 탓이다. 양도소득세를 빼고 나면 같은 단지, 더 작은 평수의 집도 못 산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대출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 내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해 대출을 금지하는 초강수 카드를 꺼냈다. 당시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서울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이후 집값 급등세를 타고 이 기준을 넘어서는 아파트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지난해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2019년 6월 기준 15억원 초과한 서울 아파트는 전체의 9.9%에 불과했으나 2년 후인 작년 6월에는 이 비중이 22.4%로 급증했다. 서울 아파트 5채 중 1채는 주택담보대출로 구입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담보별이 아닌 차주별로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DSR까지 도입되면서 대출규제가 더더욱 강화됐다. DSR은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연간 납부해야하는 원리금상환액이 연소득의 일정수준을 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는 규제지역에서 시가 6억원을 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경우 DSR을 적용하고 있다. 서울 지역 대부분의 아파트가 DSR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LTV 기준만 충족하면 됐지만, DSR 적용으로 대출총액이 줄면서 현금이 충분치 않으면 집을 사기가 어려워졌다.

◇ 전문가들 “차기 정부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 답습해선 안돼”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과오(過誤)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천편일률적인 대출 규제를 없애고 차주별 특성에 맞게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세제 또한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 실수요자나 일시적 1가구 2주택자 등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현재 정부는 ‘핀셋규제’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지역과 금액에 따라 각종 세제 및 대출규제를 차등 적용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시세가 워낙 오르다보니 규제가 적용되는 주택이 늘어나 서민들이 집을 사기가 어려워졌다”면서 “대출에 대한 부분도 차주별로 정도를 다변화했어야했는데 너무 일괄적으로 규제하면서 더 문제가 됐다”고 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새 정부에서는 15억원 이하 주택담보대출 제한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규제도 없애야 한다”면서 “대출한도는 각 금융기관에서 차주가 갖고 있는 재산과 신용도에 따라서 정하면 된다. 정부가 대출한도를 정해버리면 실수요자들이 불이익을 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