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재건축 현장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공사 현장에는 15일 0시부터 ‘유치권 행사중’이란 현수막이 걸렸다. 재건축 조합과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인 시공사업단이 공사를 중단하고 유치권 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이 계약 해지를 예고하고 있어, 둔촌주공의 앞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아파트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 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둔촌주공 조합은 지난 2010년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으로 구성된 시공사업단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재작년 착공에 앞서 공사비를 약 5600억원 증액하는 계약을 맺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물가상승에 따른 건축비 증가 ▲자재변경 ▲기존 1만1106가구에서 1만2032가구로의 가구 수 증가 ▲상가공사 포함 등의 조건으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기존 2조6706억원이었던 공사비가 3조2293억원으로 약 5600억원 증가했다.

둔촌주공 조합이 시공계약을 맺은 2016년10월 직전인 당해 9월 기본형건축비는 공급면적(3.3㎡)당 583만4000원이었다. 공사비 증액계약을 맺기 3개월 전인 2020년 3월 기본형건축비는 647만5000원으로 약 11% 증가했다. 증액 금액의 약 40%는 물가 상승분, 나머지는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건축비인 셈이다.

갈등은 새 조합 집행부가 전임 집행부가 맺었던 공사비 증액 계약을 절차상 문제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조합은 ▲한국감정원 공사비 검증절차 누락 ▲허위 무상 지분율로 기망하여 결의 편취 ▲확정 지분제를 변동 지분제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설명 누락 등의 이유로 해당 계약이 무효라는 입장이다.

현 집행부는 지난달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도 제기했다. 시공사업단이 공사중단을 예고하며 맞대응하자 조합은 지난 15일 공사 중단 직전 두 차례에 걸쳐 시공사업단에 조건부로 공사비 증액을 수용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지만, 아직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해당 공문은 시공사업단과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을 인정할 테니 고급화 공사에 조합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라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공사비 증액을 인정할 수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일부 후퇴했다. 그러나 시공사업단은 조합의 특정 업체 마감재 선택 요구,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 무효화 소송 제기 등을 이유로 결국 공사를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둔촌주공의 미래를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예측하고 있다.

17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공사가 중단된 채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뉴스1

①합의 후 공사 재개하면 모두에게 ‘해피엔딩’

건설과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임 둔촌주공 집행부가 시공사업단과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을 인정하고, 사업을 빨리 재개하는 게 시공사업단과 조합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평가한다. 재건축 사업이 미뤄질수록 조합원들과 시공사업단의 금융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조합이 금융권과 맺은 대출 계약 금액은 총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른 연간 이자 부담은 약 800억원인데, 사업이 지연될수록 조합이 부담해야 할 이자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 대출해준 금융사 17곳의 대리은행인 NH농협은행은 이달 말 대주단 회의를 열어 공사 중단 관련 현황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 논의할 예정이다. 최악의 경우 조합에게 대출해준 사업비를 ‘만기 전 회수’할 수도 있다.

약 4000명에 달하는 둔촌주공 공사현장 노동자들의 생계도 문제다. 이들은 지난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갈등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현장 건설노동자들만 하루아침에 해고돼 생존권 위기에 내몰렸다면서 시공사업단과 서울시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공사중단 상태가 길어질 수록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서울시도 양측과 개별면담을 진행하며 조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그동안 강동구청과 함께 조합과 시공사업단 사이에서 약 10차례 중재에 나섰다. 지난달 22일에도 중재회의를 열었지만 결렬된 바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국내 최대 재건축 현장이라는 점에서 사태가 지연될 수록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면서 “양측의 금융 부담은 물론 건설자재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양측이 최대한 빨리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했다.

현재 둔촌주공의 공정률은 52%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합의로 공사가 재개되면, 일반분양가 산출 작업 등의 진행이 가능하다. 빠르면 올해 안에 ‘서울 분양시장의 최대어’라 불리는 둔촌주공 일반분양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총 1만2000여가구의 둔촌주공 일반분양 규모는 4786가구에 달한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서울건설지부 노조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중단 사태 건설노동자 고용대책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②새 시공자 선정하면… 투입된 공사비, 조합 또는 새 시공사가 갚아야

15일 0시를 기점으로 시공사업단이 공사 중단에 들어가자 조합은 이전 집행부가 통과시킨 공사비 증액 결정을 16일 취소했다. 조합은 공사 중단이 10일 이상 계속되면 시공사 교체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오는 25일 총회를 열고 시공계약 해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조합의 총회만으로 시공계약을 해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조합이 시공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시공사업 해지권’을 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사중단의 책임이 시공사업단에 있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시공사업단과 조합의 법적 다툼이 해결되는 데에는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 그만큼 공사 일정이 지연되는 것이다.

실제 시공사 교체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업계에서는 회의적이다. 공사중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상관없이 시공계약이 해지되면, 조합은 시공사업단이 그동안 투입한 금액을 물어줘야 한다. 시공사업단은 그동안 투입된 공사비, 조합에 빌려준 대여금 등 각종 비용이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동산 분쟁 전문인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시공계약 해지 사유가 누구에게 있든 기존에 들어간 공사비는 정산을 해줘야하고, 귀책 사유가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손해배상 주체가 달라진다”면서 “만약 조합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면 조합은 공사비에 더해 사업이 지체된 데에 대한 손해배상금까지 건설사에게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새로운 시공사가 조합이 기존 시공사업단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을 떠안는 방법도 있다. 한 정비사업 업계 관계자는 “시공사 교체시 새 시공사가 조합 대신 각종 비용을 변제해줄 수도 있지만, 다른 건설사가 짓다가 만 공사현장을 대신변제까지 하면서 들어갈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비슷한 사례도 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국제빌딩 4구역 개발사업이다. 이 구역 조합은 2007년10월 삼성물산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2011년 시공사와 추가분담금 문제로 갈등을 빚다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시공사 재선정에 나섰지만, 오랫동안 시공사를 찾지 못하다가 서울시가 공공지원에 나서면서 2015년에야 효성을 새 시공사로 선정했다.

19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 사무실의 모습. / 뉴스1

③유치권에 의한 경매… 조합·시공단 모두에게 ‘최악’

현재 시공사업단이 행사 중인 유치권(留置權)은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이에 관해 생긴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즉, 시공사가 공사비를 받을 때까지 건물을 차지하는 것이다. 조합이 자체적으로 공사비를 정산하거나 이를 대신 변제해줄 새로운 건설사를 찾지 못하면, 시공사업단은 경매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유치권에 의한 경매’를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사업단 모두에게 최악의 경우라고 평가한다. 우선, 유치권에 의한 경매 절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합과 시공사 간 협상이 법정 공방을 거쳐 유치권 행사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속도가 생명’인 정비사업장에서 이 판단을 받아내는 데에도 상당 시간이 걸린다.

만약, 공사현장이 경매에 나와도 문제다. 경매에 나온 미준공 건물은 권리문제부터 복잡하다. 통상적으로 선순위는 대출해준 금융권이 갖고, 그 다음으로 시공사와 관련 업체들이 유치권을 행사한다. 업계에서는 둔촌주공에 대한 경매가 이뤄져도, 새 주인을 만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여러 차례 유찰을 겪다가 현 시공사업단이 낙찰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경매에서 유치권은 배당요구 대상이 아니다. 유치권자가 경매 절차에 들어가는 이유는 해당 물건 낙찰자가 유치권자들한테 변제를 해야하기 때문”이라며 “다른 건설사가 낙찰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시공사업단이 낙찰을 받아 사업시행주체가 되더라도, 그 절차를 변경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경우 둔촌주공 조합원들은 재산권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사업부지는 시공사에게 넘어가고, 조합원들은 사업부지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이주를 시작해 5년 가까이 완공을 기다리며 떠돌던 조합원들이 갈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초고층 고가 아파트 ‘트리마제’로 탈바꿈한 성수1지역주택조합 사업이 그 예다. 조합은 2004년 두산중공업을 시공사로 해 사업을 진행하던 중 분담금, 분양가 등을 두고 시공사와 갈등을 벌이다가 부도가 났다. 결국 두산중공업이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인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사업부지와 분양 받을 권리를 박탈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