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밤에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이 있다. 픽셀 단위의 커튼월에서 표출되는 밝은 조명, 빛나는 점과 점을 마치 별자리를 헤는 것처럼 이어붙이는 재미가 쏠쏠한 장교동 한화빌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야경. /한화건설 제공

청계천 앞 한화빌딩은 현대적 오피스 빌딩의 화려함을 온전히 갖춘 건축물이다. 그러나 한화빌딩이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한화빌딩은 준공 29년차를 맞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지하 4층에서 지상 29층까지를 아우르는 전층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건물이다.

◇현암빌딩에서 한화빌딩으로

원래의 한화빌딩이 완공된 것은 지난 1987년. 당시는 88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전역에서 대대적인 도심 재정비 사업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대한주택공사는 1984년 6월부터 저층 인쇄소, 상가, 주택 등이 빼곡한 을지로 제16지구를 재개발하는 사업을 착공했고, 그 결과 세워진 빌딩이 바로 한화빌딩이다.

리모델링 이전의 한화빌딩. /한화건설 제공

당시 신문 등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 그룹은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이 빌딩을 600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화약 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아호인 ‘현암(玄巖)’을 따서 현암빌딩이라고 명명했고, 그룹 계열사 12개사가 입주했다. 한화그룹이 창업 35년 만에 마침내 마련한 첫 사옥으로 그 의미가 각별했다.

준공 당시에는 최신식 오피스 빌딩으로 명성이 높았으나, 강산이 세 번은 변하는 세월의 파고를 지나며 현암빌딩은 점점 노후화됐다.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도 그랬다.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한 김두용 한화건설 차장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워 에너지 효율도 떨어질 뿐더러 배관이 노후하고 정화조가 터지는 등 노후 정도가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역사를 간직했지만, 이제는 너무 낡아버린 현암빌딩. 한화그룹은 이 오래된 그룹의 랜드마크를 두고 새 건물로 이전하는 대신, 2010년대 이후에 걸맞는 스마트 빌딩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네덜란드 유엔스튜디오와 국내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게 됐다.

당시 설계에 관여한 이들은 시설 개보수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콘셉트’였다고 전했다. 한국화약그룹에서 한화그룹으로. 사명이 바뀐만큼 30년간 한화그룹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주력 사업 영역을 부단히 변화시켜왔다. 과거엔 ‘화약’으로 대표되는 중공업 기업 집단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금융과 신소재, 그리고 태양광을 위시한 친환경 에너지를 아우르는 첨단 기업이 됐다.

◇‘태양광 발전’으로 파라메트릭을 입다

새롭게 단장하는 사옥의 중심 소재로 낙점된 것은 ‘태양광’이었다. 외벽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부착한 커튼월 방식을 적용해 태양광 인텔리전스 빌딩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김진호 간삼건축 실장은 “리모델링 계획을 수립하던 당시는 한화큐셀을 인수하고 태양광에 투자하면서 친환경 사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시기였다”면서 “한국화약 상징으로 기능하던 본사건물에서 새로운 콘셉트인 태양광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로비 측 전경. /최상현 기자

시공을 맡은 한화건설은 그룹 계열사인 한화큐셀의 첨단 모듈을 유리와 함께 주 외장재로 사용했다. 건물 주변의 태양 궤적을 분석하고, 빌딩 남·동측 8~29층과 옥상 전면에 효율성을 고려한 위치와 각도로 태양광 패널을 배치했다. 이렇게 배치된 태양광 패널은 하루 평균 300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빌딩 2개 층의 조명을 모두 밝힐 수 있는 에너지에 해당한다고 한화건설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화빌딩은 ‘친환경 빌딩’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미적 가치도 놓치지 않았다.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유엔스튜디오가 제안한 파라메트릭 디자인(Parametric Design)과 태양광 패널 시스템을 접목한 것. 김진호 간삼건축 실장은 “제시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여러 종류의 변수를 입력해서 그 변수에 따라 기하학적 디자인을 형성하는 것이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라면서 “태양광 패널의 입사각과 조망 등의 요소를 고려해 입사량에 따라 역동적인 유선형의 흐름을 전면에 표출하고자 했다”고 했다.

리모델링된 한화빌딩 건물에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이 적용됐다. /한화건설 제공

리모델링된 빌딩 내부에는 주로 한화건설의 상징색인 주황색이 사용됐다. 현암빌딩 시절 외부를 단장했던 주황색이 이번에는 내부로 들어간 것이다. 또 마치 회색 골판지와 같은 패턴을 내벽 곳곳에 배치해 다채로움을 더했다.

공간 배치를 보면 ‘비즈니스 센터’라는 이름으로 꾸민 3층부터 4층까지에는 공용 미팅 공간과 회의실 등을 집중적으로 놓았다. 나머지 5층부터 26층까지는 사옥에 입주한 14개 그룹사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사무공간을 재배치했다.

가장 전망이 좋은 28층과 29층에는 직원 복지 공간이 들어섰다. 이들 두 층은 특별히 층고를 조정하는 공정을 거쳤다. 28층 구내식당 ‘고메이 플레이스’를 이용하는 직원들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피트니스 센터를 배치하는 29층은 비교적 층고가 덜 높아도 된다는 판단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여타 리모델링 건물과 비슷하게 한화빌딩도 빌딩 주변을 둘러싸던 자동차들은 모두 지하 주차장을 만들어 내려보냈다. 이렇게 확보한 건물 앞 지상층은 이벤트 광장과 미디어월 등 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청계천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픽셀 단위로 펼쳐지는 빛의 축제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준다는 취지였다.

◇업무하며 공사하는 ‘재실 공법’

“솔직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만큼 어려운 공사였습니다.”

김두용 한화건설 차장은 한화빌딩 리모델링 공사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리모델링 작업에 꼬박 45개월이 소요됐는데, 이는 30년 전 처음 건물을 지었을 때 걸린 42개월보다도 오히려 더 걸린 것이다.

공사 기간이 길었던 이유는 ‘재실(在室) 공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리모델링 공사는 입주사를 모두 내보내 공가 상태를 만든 뒤 한꺼번에 공사를 진행한다. 반면 재실 공법은 일부 층이 먼저 리모델링을 하고, 작업이 완료되면 다른 층을 순차적으로 공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화빌딩이 재실 공법을 통해 리모델링 되는 모습. /한화건설 제공

공사는 시공사인 한화건설이 전경련 회관으로 이전한 다음 아래 층부터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낮 동안은 다른 층에 입주한 계열사들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공정을 주로 진행했고, 주요 공정은 대부분 야간이나 주말에 단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차장은 “공정의 50% 정도를 야간 철야 공사로 소화했고, 4년 동안 빨간 날은 무조건 일하는 날이었다”면서 “빌딩 위치가 도심 한가운데다 보니 리모델링 공사에 민원도 많이 들어와 고생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화빌딩이 재실 공법을 택한 이유는 압도적인 경제성 때문이었다. 재실 공법은 동선과 공정계획 등에서 난이도가 높지만, 리모델링 기간에도 임대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 빌딩에 입주해 있던 한화그룹 계열사가 모두 임시 거처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재실 공사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45개월의 긴 리모델링 끝에 ‘빛의 건축물’로 재탄생한 한화빌딩은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가 수상하는 ‘2021 CTBUH 어워드’ 리노베이션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한화빌딩은 태양광 패널을 접목한 친환경 빌딩이라는 점에서 높은 주목을 받아 국내 건축물로는 유일하게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