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른 미군 땅이 전부 공원이 되는 거잖아요. 수십 년 만에 되찾은 땅에 대통령이 온다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아요.”

3월 28일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바라본 용산기지 모습. /최상현 기자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망대에서 만난 윤정선(47)씨는 “하루빨리 용산공원이 우리 품에 돌아왔으면 좋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이 날 국립중앙박물관 전망대에서는 용산기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먼발치에 보이는 국방부를 가리키며 “저기에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온다고 한다”면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가자 ‘용산 가족공원’이 나왔다. 과거 미군 골프장으로 이용되던 것을 지난 1992년 서울시에서 인수해 공원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이곳은 주말마다 많은 연인들이 찾아 인증샷을 찍는 ‘인스타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나들이를 나왔다는 한모(24)씨는 “꽃나무가 차츰 피어 풍경이 굉장히 예쁘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출사를 나왔다”면서 “이 공원도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더 큰 공원이 만들어진다면 어떨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3월 28일 서울 용산가족공원에 꽃나무가 피어 있다. /최상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용산공원 인근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하면서 용산공원 조성 사업에도 한층 박차가 가해질 전망이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주위 미군기지 반환이 예정되어 있어 신속하게 용산공원을 조성하여 국방부 청사를 집무실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 수십만 평 상당의 국민 공원 공간을 조속히 조성하여 임기 중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새롭게 조성될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시민공원은 어떤 모습이 될까. 먼저 국방부와 맞닿은 용산공원과의 연계성을 고려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용산 이전이라는 것이 용산 시민 공원이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겠냐”면서 “아주 신속하게 공원 조성을 완료하고자 하고, 공원이 되면 지금 벽돌로 돼 있는 담벼락을 다 허무는 소통 계획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된 후 반환되는 용산공원은 총면적이 300만㎡에 달하는 초대형 공원으로, 지난해 12월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 기본계획’이 수립된 바 있다. 계획에 따르면, 용산공원은 남산과 한강, 그리고 단절돼 있던 용산의 동·서를 잇는 생태 축의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또 미군이 남기고 간 건물 가운데 근현대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을 선별하고, 이를 공원시설의 일부로 재조성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인근에 있는 전쟁박물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 문화시설과의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생태성과 역사성, 그리고 문화성이 잘 어우러지는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수립된 상태다.

◇백악관 웨스트윙처럼... 공원에 둘러싸인 집무실

윤 당선인이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시민공원 조감도’를 공개했다. 조감도를 보면, 집무실이 입주하는 국방부 본 청사 좌우로 큰 건물이 하나씩 자리하고, 이외는 대부분 녹지와 산책로로 구성된 모습이다.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시민공원을 조성하고 소통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접근성이 낮아 ‘구중궁궐’로 지적됐던 청와대와 확실히 차별하겠다는 구상이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시민공원 조감도(왼쪽)와 백악관 프레지던트 파크 지도. 건물 배치와 공원 형태 등에서 많은 유사점이 나타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일러스트=손민균

이 조감도는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에서 상당히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월 말 윤 당선인이 처음으로 청와대 해체 구상을 밝힐 당시에도 “미국의 경우를 보면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 주변에 참모들이 있고, 웨스트윙(백악관 내 비서동)에 전문가들이 밀집해 있어서 의사소통이 원활하다”면서 사례로 들기도 했다.

백악관은 중앙관저를 중심으로 일반에 공개된 ‘이스트윙’과 대통령 집무실인 ‘웨스트윙’이 나란히 이어진 구조다. 백악관의 두 날개는 각각 정면에 공원 녹지가 조성돼 있는데, 이스트윙의 ‘재클린 케네디가든’과 웨스트윙의 ‘로즈가든’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 접한 로즈가든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한 세기 넘게 수많은 정책을 발표하고 각종 행사를 열어온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이다. 지난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 처음 조성된 로즈가든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프랑스 등 유럽 순방 때 봤던 정원들에 감명받아 재설계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미국에서는 야외 연단 앞에서 발표하는 대통령과 로즈가든의 잔디밭에 마련된 접이식 의자에 앉아 질문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전파를 탄다. 대통령의 기자회견 빈도가 적고, 이마저도 대부분 청와대 부속 건물인 춘추관에서 엄숙한 분위기 아래 진행하는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면 백악관을 둘러싸고 있는 프레지던트 파크를 발견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1790년에 조성된 프레지던트 파크의 중심부가 백악관이고, 북쪽은 라파예트 파크, 남쪽은 일립스로 불린다. 일립스(The Ellipse)는 ‘타원’이라는 의미로 공원의 산책로가 원형을 이루고 있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윤 당선인이 공개한 ‘용산 대통령 집무실·시민공원 조감도’에 나타나 있는 원형 산책로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다.

인근 문화시설과의 연계가 뛰어나다는 점도 워싱턴 시민들이 백악관 일대로 모이게 하는 요인이다. 백악관 남측 공원은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 의회 의사당까지 맞닿아 있다. 링컨기념관과 의회 의사당 사이에는 스미스소니언 재단이 만든 국립항공우주박물관, 국립자연사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대통령 집무실 인근이 문화 중심지 역할도 하게끔 의도했다.

◇ 센트럴파크를 닮은 용산공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호재’

용산 대통령 집무실은 추후 총면적 300만㎡에 달하는 용산공원을 배후에 두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만한 면적의 공원이 대통령 집무실과 연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 미국 워싱턴 D.C.의 프레지던트 파크도 총면적이 약 31만㎡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 부지 또한 ‘시민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녹지화가 추진되며 공원 규모는 기존에 수립됐던 용산공원 계획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 22일 서울 용산공원 장교숙소 5단지 전시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용산일대 미군기지 모형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전문가들은 용산공원 조성과 대통령 집무실 시민공원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과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용산공원 종합 기본계획 연구책임자인 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용산공원은 오랜 기간 숙고를 거쳐 수립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부지 반환 7년 후 시점에 조성 완료가 예상되는 장기 계획”이라면서 “시민공원은 ‘국방부 부지 공원화’로 따로 떼어놓고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웨스트윙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대통령 집무실 시민공원과는 달리, 용산공원은 지난 지난 1857년 개원한 센트럴파크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센트럴파크의 규모도 약 341만㎡ 규모다. 현대 도시공원의 시초라고 불리는 이 광활한 공원 가운데에는 인공호수가 조성돼 있고, 호수를 중심으로 약 2.5㎞의 산책로도 형성돼 있다. 이외에도 근처에 박물관, 야생보호구역 등이 다양하게 형성돼 있어 매년 3750만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축집단엠에이 건축사무소의 유병안 대표는 “공원 내 곳곳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수시로 공연하는 뉴욕필하모닉, 각종 전시들이 열리는 센트럴파크를 벤치 마크할 필요가 있다”면서 “단순히 잔디만 까는 것이 아니라 공연과 전시,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공원에 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용산공원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배 교수는 “보안시설인 국방부는 용산공원에의 접근성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예상됐는데, 시민공원이 완공되면 용산공원으로의 연계성이 개선되며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고 했다.

또 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용산공원에 용적률 1000%로 공공주택 8만 채를 짓겠다는 주장이 나와 조경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한 바 있는데, 이러한 주택 사업의 추진동력도 상당 부분 약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통령 집무실이 공원과 바로 인접하게 된다면 이 같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는 어려워지지 않겠냐”고 했다.

또 그간 용산공원 조성 계획은 국토교통부와 국방부, 외교부 등 여러 부처가 연관돼 진척이 빠르지 못했는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계기로 명확한 컨트롤타워 아래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경호와 소통의 접점 찾아야... 장기적으로 ‘신축’도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시민공원 조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절과 개방의 적절한 타협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집무실과 시민공원이 맞닿는 접점에서 대통령 경호를 위한 최소한의 단절성은 지키면서도, 윤 당선인이 말한 대로 ‘산책 나온 국민이 대통령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정도의 개방성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3월 28일 서울 용산구 전쟁박물관에서 바라본 국방부 건물. /최상현 기자

강철희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놀러 오는 공간이라면 고수부지로도 족하지, 대통령 집무실에 공원을 조성할 필요가 없으니 외부와의 접점을 최대한 넓혀야 한다”면서 “집무실 남쪽은 시민과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북쪽은 엄중한 보안 아래 있는 대통령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공희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는 “백악관 스타일을 벤치마킹한다고 하면 최소한의 경호 용이성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 개방을 위한 접촉면을 넓히는 방식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 “공간의 특성상 단순한 공원이라기보다는 공원형 광장으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집무실 시민공원이 시위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윤 당선인은 “백악관 같이 낮은 펜스를 설치하고 여기까지(집무실 앞) 시민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할 생각”이라고 했지만, 격화된 시위는 대통령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악관 북측의 라파예트 파크는 ‘시위 1번지’로 불린다. 이곳에서 각종 주제로 시위를 벌이는 미국 시민들의 소리가 백악관까지 들릴 정도라고 한다. 지난 2020년에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가 격화되면서 한때 공원이 폐쇄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윤 당선인은 취임 이후 최대한 빠르게 국방부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할 전망이다. 그러나 애초에 대통령 집무실 용도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만큼 리모델링 등으로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장기간에 걸쳐 용산공원 내에 집무실을 신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국방부 부지는 향후 수십 년간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기에는 서쪽에 치우친 감이 있고, 인근에 미군 호텔이나 헬기장 등 반환되지 않는 시설도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국방부 부지를 용산공원으로 편입하고, 한미연합사 자리 등 공원 내 좋은 입지를 찾아 신축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