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기로 하며 개방되는 청와대를 세계적 명소로 만들 방안에도 관심이 모인다. 외국에는 대통령 집무실이나 궁전을 옮긴 사례가 꽤 있는데,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궁전은 궁전대로 두고 공원만 개방한 영국 세인트제임스 파크가 세계적 명소로 부상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일 오후 시민들이 청와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설치하고 청와대는 국민에 개방할 방침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기록관이든, 기념관이든, 박물관이든 온 국민이 기록하고 새기는 장소가 될 것”이라면서 “지금도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본관 등을 자라나는 아이들의 산 교육의 장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느냐에 대해 앞으로도 많은 의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청와대 부지는 예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로 알려져, 900여년 전 고려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의 별궁)이 건립된 장소였다.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後苑)으로 쓰였고, 일제강점기엔 조선총독관사가 지어졌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이 관사를 ‘경무대’라는 이름의 집무실로 이용했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명했다.

시민들에게 익숙한 푸른 기와의 청와대 본관은 1991년 준공된 건물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청와대를 신축(1991년 준공)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조선총독관사에서 유래한 구관을 철거하며 청와대는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집무실로 쓰며 청와대는 권력의 상징이 됐다.

◇집무실이 박물관으로 180도 탈바꿈… ‘루브르 모델’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전경. /루브르박물관 페이스북

국가의 역사를 간직한 대통령 집무실은 외국인들에겐 관광 필수코스다. 경복궁처럼 청와대도 국가적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도 대통령 집무실이나 궁전을 옮긴 사례가 종종 있었다. 용도를 상실한 이전 집무실을 개방할 땐 ‘루브르 모델’이 많이 쓰였다. 건물은 보존하되 내부 용도를 180도 바꾸는 방식이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은 과거 프랑스 국왕이 쓴 궁전(루브르궁전)을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일반에 개방한 사례다. 왕실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사하며 텅 빈 루브르궁전은 왕실 후원을 받는 예술가들이 모인 아틀리에(작업장)로 쓰이다 박물관으로 변신, 세계적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외국에선 이전 집무실을 ‘루브르 모델’로 개방한 곳이 많다. 대만도 현재의 타이베이 총통부 건물을 쓰기 전 1949년까지 이용한 난징 총통부 건물을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꿔 개방했고, 멕시코도 2018년까지 이용하던 대통령 관저 ‘로스 피노스’를 박물관과 문화센터로 개방했다. 루브르, 영국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도 과거 러시아 제국의 ‘겨울궁전’이 박물관으로 변신한 사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전경. /에르미타주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청와대도 ‘루브르 모델’ 도입으로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가 수십 년간 수집한 미술품을 활용해 미술관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청와대는 총 700여점의 도자기, 한국화, 서양화 등 미술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선 2018년 5월 열린 청와대 소장 미술품 특별전 ‘함께, 보다’에는 31점의 미술품이 전시돼 71일 동안 약 13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청와대 인근 송현동엔 이건희 기증관(가칭)도 조성될 예정이라 문화·예술시설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건축계에선 이건희 기증관에 들어설 미술품을 아예 청와대에 들여놓자는 의견도 나온다. 대구월드컵경기장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국립경기장, 중국 윈난성 쿤밍 꽃박람회 컨벤션센터 등을 설계한 강철희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종합건축사사무소 이상 대표)는 “국보급 미술 작품을 다수 보유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품을 청와대로 들여와 미술관으로 조성하면 역사적 건물이라는 청와대 상징성과도 잘 맞고, 시민들도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면서 “기증관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어 미술관 건립 비용까지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미술관보다 콘서트홀이 어떤가”라고 말했다. 그는 김수근건축연구소에서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짰고, 최근에는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광화문광장 조성 의견 수렴을 이끌었다. 국립국악당과 한국종합전시장(現 코엑스)도 설계했다. 김 대표는 “‘인구 1000만 서울’에 훌륭한 콘서트홀이 없다는 것은 도시의 약점이자 수치”라면서 “서울에 미술관은 충분한데 콘서트홀은 부족해 서울시향이 전용 연주홀을 못 갖고 세종문화회관을 빌려 쓰는 처지일 정도다. 청와대에 서울시립교향악단 전용 콘서트홀을 조성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건물 용도 유지하며 개방… ‘세인트제임스 모델’

영국 런던 세인트제임스 공원의 모습. /세인트제임스 공원 공식 홈페이지

외국에선 ‘세인트제임스’ 모델도 종종 등장한다. 건물 용도를 바꾸지 않고 국가 소유 제2공관으로 남기거나 있는 그대로 개방하는 방식이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제임스 궁전은 버킹엄 궁전에 왕궁 지위를 내준 뒤 왕립공원을 일반에 개방해 런던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세인트제임스 궁전은 여전히 왕실 소유로 개방되지 않았음에도 공원은 런던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박물관과 같은 대형 집객시설이 없음에도 열린 공간으로 사랑받는 장소다.

대만의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의 스린 관저(사림 관저)도 ‘세인트제임스’ 모델이다. 스린 관저는 중국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퇴각한 장제스 총통 부부가 1950년부터 1975년 장 전 총통 사망 때까지 24년간 관저로 쓰던 곳이다. 관저는 이후 21년간 폐쇄됐는데, 대만은 이 관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1996년 일반에 개방했다. 거실과 식당, 침실, 서재 등을 그대로 보존했고 생태습지와 원예원 등 공원도 그대로 남겼다. 대만인들의 휴식공간이자 관광지로 사랑받는 장소다.

대만 초대 총통 장제스가 1950~1975년 관저로 쓴 스린 관저(사림 관저)의 모습. /타이베이시 문화국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교 푸시킨 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도 러시아 제국 시절의 화려함을 그대로 일반에 개방했다.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 최초 여황제 예카테리나 1세가 지은 예카테리나 궁전은 과거 황제와 귀족들이 여름을 보낸 별궁으로, 화려한 건물과 드넓은 정원이 당시 모습으로 공개됐다. 방 전체가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호박방’으로도 유명하다.

청와대는 국내 근현대사 역사가 응집된 장소성이 강한 곳이라는 점에서 세인트제임스 모델이 적합하다는 시각도 있다. 1990년 승효상, 조성룡, 민현식 등 건축가와 함께 ‘4·3그룹’을 결성하고 김수근 공간연구소와 정림건축을 거쳐 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한 방철린 건축가(건축그룹칸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는 “70여년 역사가 축적된 건물인 청와대는 흔적을 가급적 흔들지 않고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급적 기존 상태를 바꾸지 않는 데 중심을 두고, 최소한의 시설만 박물관 등으로 용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그간 청와대로 인해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데 제한이 있었는데, 광화문에서 시작해 경복궁과 청와대를 지나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보행로를 확보하면 주변과 연계한 공원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방 대표는 대덕과학문화센터와 부산문화방송사옥을 설계한 바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정책자문단장을 지낸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청와대는 개발보다 보존의 방향이 맞는다”면서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대통령 기념관 등을 짓는 방안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은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청와대는 역사적 건물인 만큼 보존하는 방식이 최선”이라면서 “모든 건물을 전부 상시개방하는 건 시위나 보안 등 문제로 무리일 수 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개방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