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 재건축 사업의 공사비 증액을 둘러싸고 시공사업단과 조합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시공사가 예고한대로 다음 달 15일 공사가 중단될 경우, 오는 5월로 예정돼 있던 일반 분양은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둔촌주공 대기 수요자’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3월 17일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뉴스1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전임 조합장이 지난 2020년 6월 시공사업단과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 21일 서울 동부지법에 ‘변경계약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계약에서 공사비는 2조6706억원에서 3조2293억원으로 약 5500억원 증액됐다.

조합 측은 ▲허위 무상 지분율로 기망하여 결의 편취 ▲확정 지분제를 변동 지분제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설명 누락 ▲한국감정원 공사비 검증절차 누락 ▲무권 대리 및 기타 사유 등의 사유로 해당 계약이 무효라는 입장이다

앞서 조합은 지난 19일 대의원회를 열고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 시공사업단과 이전 조합이 체결한 공사 변경 계약을 취소하는 안건을 총회에 상정했다. 총회는 오는 4월 16일 개최될 예정이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공사비 변경 갈등과 관련해 진척이 없을 경우 다음 달 15일부터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해당 내용이 담긴 공문은 지난달 강동구청과 주택도시보증공사에도 전달된 상태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조합 집행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공사비 증액은 이미 결의된 내용이므로 조합이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대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공사를 해왔는데,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계약 해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조합 관계자도 “시공사업단과의 협의에 확실히 진척이 있지 않는 한 상반기 분양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업단이 실제 공사를 중단하는 경우 조합은 시공계약 해지 등 모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5월로 예정됐던 둔촌주공의 일반 분양은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일반 분양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입주 예정 날짜가 나와야 하는데 법적 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에서는 이를 확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은 원래 지난 2019년 7월 조합원 분양 신청에 이어 이듬해인 2020년 초에 분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분양가를 3.3㎡당 3550만원 수준으로 추진한 조합과는 달리, 분양가를 3000만원 이하로 책정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서 분양 일정이 계속 미뤄졌다.

이 때문에 분양 시점이 올해 5월로까지 늦춰졌지만,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연내 분양도 불투명해지는 상황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소송 절차에 1년은 걸릴테고, 시공사업단을 교체하기라도 한다면 연내 분양은 커녕 입주 시점도 언제가 될지 확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청약 대기 수요만 5만… 매매시장 유입될까

이에 둔촌주공 일반 분양을 고대하던 청약 대기자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둔촌주공 1만2032가구 가운데 일반 분양 물량은 4786가구로 그동안 분양이 드물었던 서울에서 오랜만에 이뤄지는 대규모 공급이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근 시세보다 낮게 공급되기 때문에 전용면적 84㎡ 기준 8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이 기대된다는게 업계 설명이다.

그러나 이미 2년이나 분양이 미뤄진 상황에서 추후 분양 일정도 안갯 속으로 빠져들면서 이제라도 기존 아파트 매매에 나서야 하는게 아닌가 고민하는 청약 대기자도 많아지고 있다. 개인사업자 성모(42)씨는 “오는 7월에 전세가 만료되는데, 원래라면 둔촌주공 청약 이후 분양가 납부를 위해 월세살이를 할 계획이었다”면서 “그런데 청약이 또 밀린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적당한 아파트를 매수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둔촌주공에 대한 대기 수요가 약 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둔촌주공은 3.3㎡당 3550만원 기준으로 소형 주택형인 전용 59㎡의 분양가도 9억원이 넘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5만명의 대기 수요는 60점 이상 높은 가점에 최소 7억원 이상의 ‘실탄’이 있는 청약 대기자를 의미한다.

이 같은 둔촌주공 대기수요가 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분양가가 9억이 넘는 둔촌주공에 청약할 만한 경제력이 있는 대기 수요는 적게 잡아도 5만명 이상”이라면서 “이들이 청약을 포기하고 매수 수요로 전환되면 9억~15억대 매물 가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직장인 윤모(49)씨는 “청약을 기다리는 동안 이미 서울 아파트값이 너무 많이 올랐는데, 여기서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크다”면서 “주말마다 가진 자금으로 매입할 수 있는 조합원 매물이나 준신축 아파트를 알아보러 임장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공급 물량이 부족한 서울에서 둔촌주공과 같은 매머드급 단지의 분양이 계속 늦춰지는 것은 수급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둔촌주공 일반 분양분(4786가구)는 지난해 서울 전체에서 분양된 8000여가구의 절반 이상인 수치”라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선 양도세 완화 등으로 구축 매물을 풀리게 하는 것 외에도, 신축 공급도 꾸준히 이뤄져야 하기에 분양 연기는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