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와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청약시장에서 눈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입지, 아파트 브랜드 등에 따라 청약 결과가 갈리는 ‘옥석 가리기’가 한창이다. 인기가 없는 단지의 경우 중도금 무이자 혜택 등의 파격 조건을 내세움에도 미달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를 찾은 시민이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26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국 청약 경쟁률은 올해 들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이번달 전국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은 9.92 대 1로 전달(15.4 대 1)에 비해 하락했다. 지난해 연평균 청약 경쟁률 19.31 대 1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토막 수준이다.

수도권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이번달 수도권 평균 청약경쟁률은 8.91 대 1이다. 전달 16.81 대 1의 절반 수준이다. 작년 연평균 청약경쟁률과 비교하면 낙폭은 더 크다. 지난해 수도권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30.4 대 1로 이번달 경쟁률의 약 4배에 달한다.

최근 분양 단지들은 분양가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지난 22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영등포’는 총 57가구 모집에 1만1385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199.7 대 1을 기록했다. 전용 면적이 49~59㎡ 등 중·소형 평형 위주에 57가구로 규모도 작지만, 분양가가 인근 시세에 비해 저렴해 실수요자가 몰렸다.

같은 서울이지만,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은 단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달 서울 강북구에서 분양한 ‘북서울자이 폴라리스’는 청약 1순위에서 34.4 대 1을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의 연평균 청약 경쟁률이 163.84 대 1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경쟁률이다.

서울 외 수도권 지역과 지방에서는 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25일 기준 이번달 들어 전국에서 청약을 진행한 전국 26개 단지 중 8개 단지가 1순위 청약에서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1순위 청약에 성공한 단지들의 경쟁률도 대부분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청약 열기가 식자 일부 단지들은 분양가를 낮추거나 파격 조건을 내세워 수요자를 끌고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종합시장을 재정비해 216가구를 후분양으로 공급하는 ‘칸타빌수유팰리스’는 지난달 입주자모집공고를 취소하고 분양가를 재산정해 지난 18일 다시 공고를 냈다. 전체 22개 주택형의 평균 분양가는 기존 6억7077만원에서 6억5825만원으로 1.87% 떨어졌다.

수도권 외곽 지역과 지방에서는 중도금 무이자 대출 혜택을 제공하는 단지들이 늘고 있다. 지난 23일 입주자 모집공고를 낸 인천 연수구 ‘KTX 송도역 서해그랑블 더파크’는 공급금액의 40%까지 중도금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총 6차례에 걸쳐 공급금액의 10%씩 나눠내는 중도금의 절반 이상을 무이자로 대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중도금 무이자 혜택은 통상 분양가의 60% 수준인 중도금 이자를 건설사 또는 시행 주체가 대신 부담해주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청약 희망자는 계약금 정도만 마련하면 잔금 때까지 추가 목돈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율 증가 우려가 없어 대출규제가 강화된 지난해 말부터 중도금 무이자 혜택이 분양시장에서 확산됐다.

그러나 중도금 무이자 혜택에도 입지가 좋지 않은 지역 내 단지는 미분양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22~23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경기 평택 ‘휴먼빌 퍼스트시티’는 전용 84㎡ 1순위 기타지역을 제외한 4개 평형 7개 유형에서 미달이 발생했다. 이 단지는 계약금 정액제(1000만~2000만원)에 중도금 무이자 혜택까지 제공했지만 입주자를 유인하지 못했다.

지방 아파트들 역시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내세웠음에도 이른바 ‘줍줍(선착순 분양)’ 신세를 면치 못했다. 경북 경주 ‘신경주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경주 ‘엘크루 헤리파크’, 경북 포항 ‘남포항 태왕 아너스’ 등이다. 이 단지들은 앞서 진행된 청약에서 대거 미달이 발생한 후 현재 선착순 분양을 진행하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청약 시장은 매매 시장 분위기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청약 열기가 식은 상태에서 옥석 가리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특히 대출규제와 금리 인상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대선 주자들이 규제 완화책을 내놓으면서 입지가 특별히 좋지 않는 한 수요자들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