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파트 60년]

1958년. 한국산(産) 첫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세워졌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전후(戰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로 지어진다. 고급 맨션이 유행하고 ‘건설 붐’으로 여의도·반포·잠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며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아파트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기술까지 담긴 셈이다. [편집자주]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는 우리나라 아파트를 상징하는 오명이다. 반례를 딱 하나만 꼽자면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다. 정가운데 올림픽프라자 상가를 중심으로 5540가구가 부채꼴 모양으로 개성 있게 펼쳐져 있다. 낮은 동은 6층, 높은 동은 24층으로 부채꼴의 외곽으로 갈수록 건물 높이가 높아지는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단지 내로는 성내천이 Y자 모양으로 흐른다. 주동 배치와 건축설계로 국내 가장 개성 있는 단지다.

2020년 6월 촬영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이 아파트는 1988 서울올림픽에서 선수(현 2·3단지)와 외신기자(현 1단지) 숙소로 쓰였다. 올림픽 폐회 이후 일반인들이 입주해 아파트로 쓰이고 있다. 분양 과정에서도 독특한 점이 많았다. 올림픽 기부금을 많이 낸 순서대로 당첨자가 결정되는 ‘기부금제 분양’이 이뤄졌다.

◇부채꼴의 독특한 단지계획, ‘성냥갑 아파트’ 상식을 깨다

1988 서울올림픽은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알리는 행사였다. 당시 167개국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가운데 160개국, 1만3304명의 선수·임원단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했다. 올림픽 사상 최대규모였다. 이 대회를 위해 방이동 66만2196㎡(약 20만평)에 올림픽선수촌·기자촌아파트가 지어졌다. 잠실종합운동장까지 5km 거리로 가깝고 올림픽공원 경기장과 도보 거리여서 이 부지가 낙점됐다.

2020년 6월 촬영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6월 촬영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6월 촬영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아파트 설계를 위해 당시 국내에서 드문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진행했다. “단순한 주거공간 제공뿐 아니라, 한국 주거건축문화에 대한 하나의 획기적 전기(轉機)인 동시에 영원히 남겨질 기념비적인 장소적 의미를 갖는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라고 서울시는 공모 입찰서(1984년)에서 밝혔다. 총 39점의 작품이 제출됐고, 황일인 일건건축사사무소 대표와 재미(在美) 건축가 우규승씨의 설계가 이듬해 최종 선정됐다.

기념비적 장소가 되게끔 주동 배치를 부채꼴로 독특하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었다. 대부분 아파트는 일(一)자 성냥갑 아파트 모양인 점을 고려하면 파격이었다. 또 J자 모양의 올림픽프라자 상가(올림픽 당시 선수회관으로 쓰임)를 중심으로 가까운 단지는 6층, 먼 단지는 24층으로 지었다. 우규승씨는 1985년 6월 22일 조선일보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부채꼴 방사형을 택한 것은 일직선으로 나열·획일화된 기존 아파트단지의 단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의 아파트단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88올림픽을 상징하기 위한 기념비적 측면과 쾌적한 주거환경의 조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조화시킨 것이다. 넉넉지 않은 면적에 5700가구를 지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고밀도 현상을 막기 위해 중심부를 6층으로 낮췄고 외곽 쪽은 상향 계단식을 채택, 끝에는 24층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도록 했다.
1986년 11월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부지에서 열린 기공식의 모습. /서울사진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가 1986년 11월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기공식에 참석해 시삽하고 있다. /서울사진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86년 11월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부지에서 열린 기공식에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조감도가 설치돼 있다. /서울사진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평면에서도 독특한 시도가 이어졌다. 전용면적이 62~163㎡(분양면적 25평형~64평형)로 다양하고, 49평형 516가구, 50평형 50가구, 53평형 348가구, 64평형 238가구는 복층형이다. 또 1층 입주자가 발코니 전면부 실외 공간을 독점해 쓸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아파트 가운데 최초로 지하주차장도 지었다. 47평형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1가구 1면’, 1면당 285만원에 지하주차장을 함께 의무분양했다. 지금도 이렇게 분양된 주차장이 가구별 전용 주차장으로 쓰인다. 올림픽선수촌 지하주차장에 가보면 주차면 위에 ‘239동 502호’처럼 전용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다만 40평형 이하엔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요즘 입주민들은 안방에 욕실을 하나 추가하는 공사를 많이들 하고 있다.

◇”선수단 흥분시킬만한 시설”… 선수들, 집주인에 감사 편지 보내기도

올림픽선수촌은 설계안에 따라 1986년 11월 착공해 총 13공구로 나뉘어 1988년 6월 완공됐다. 122동, 5540가구 초대형 단지다. 선수촌(2·3단지)은 86동 3692가구, 기자촌(1단지)은 36동 1848가구다. 한신공영, 삼호, 롯데건설, 미륭건설, 라이프주택 등 13개 건설사가 시공했다. 공사비 2604억원, 연 302만6425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레미콘 50만㎥, 시멘트 123만2274부대, 철근 4만2343톤(t)이 쓰였다.

이현재 당시 국무총리가 1988년 6월 1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내부를 시찰하고 있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현재 당시 국무총리가 1988년 6월 1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단지를 시찰하고 있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88년 9월 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광장에서 ‘88 서울올림픽’ 입촌식이 열리고 있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올림픽 기간 이 선수촌은 대내외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1988년 3월 1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올림픽을 200일 앞두고 선수촌 내부를 미리 둘러본 IOC 관계자들은 “이전까지 비좁은 대학 기숙사 등을 숙소로 이용해온 각국 선수단을 흥분시킬만한 시설”이라고 평가했다. 고(故)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은 1990년 1월 18일 조선일보에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선수촌의 주거면적은 1인당 7.5㎡였는데, 서울 선수촌은 1인당 20㎡였다”면서 “역대 올림픽 가운데 주거공간이 가장 넓고 깨끗했다”고 했다.

'1988 서울올림픽' 대회 기간인 1988년 9월 25일 조선일보에 실린 올림픽선수촌아파트의 모습. 조선일보는 “결전을 앞둔 선수들이 선수촌 발코니에 나와 햇빛을 즐기며 담소하고 있다. 널어놓은 빨래와 젊은 남녀선수들의 발랄한 표정이 인상적이다”고 보도했다. /조선라이브러리100

선수촌에서 묵은 각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촌아파트 소유주들에게 ‘편지쓰기 운동’을 벌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88년 9월 25일 조선일보에 기록된 내용이다.

선수촌의 각국 선수·임원들은 올림픽 기간 중 자신들에게 기꺼이 숙소를 빌려준 선수촌아파트 소유주들에게 감사의 편지 보내기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아파트가 모두 주인이 있는 곳이며, 값도 평당 3000달러(200만원) 선이라는 말을 듣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결정, 쓴 편지를 각 동 입구에서 모으기로 했다. 이 편지는 선수촌 당국이 아파트 주인에게 보내기로 했다.

◇중개업소 1000곳 ‘러브콜’한 서울시… 수분양자는 ‘올림픽 기부금’ 내야

올림픽 폐막 이후 올림픽선수촌엔 그해 12월부터 입주가 시작했다. 분양은 이보다 앞선 1985년부터였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시기에 5540가구를 분양해야 해, 사업 주체인 서울시는 분양 촉진책을 적극 펼쳤다. 당시 1순위는 청약예금 가입 후 9개월이 경과한 사람에게 주어졌는데, 올림픽선수촌은 분양신청일 이전까지 가입한 사람에게 모두 1순위 자격을 줬다. 재당첨 금지 기간도 민간아파트에서 5년이 부과됐지만 올림픽선수촌은 예외였다. 서울시는 입주자 자녀를 보성고·진명여고에 우선 배정해주겠다고도 홍보했다.

1987년 2월 16일 촬영한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모델하우스의 모습. /서울사진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87년 2월 16일 촬영한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모델하우스의 내부 모습. /서울사진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87년 2월 16일 촬영한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모델하우스의 모습. 복층형 가구가 전시돼 있다. /서울사진아카이브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1987년 2월 22일 조선일보를 보면, 이 시기 서울시 공무원은 마치 공인중개업소 직원들 같았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서울시는 시내 부동산업자 및 새마을부녀회장단 등 1500여명을 상대로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아파트 소개회를 가졌는데, 특히 강남·강동지역 부동산업자 1000여명에게는 염보현 시장 명의로 초청장까지 보냈다”면서 “선수촌 분양에서 신청자가 미달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 갖가지 분양촉진책을 내놓아 마치 공공기관이 복덕방으로 전업한 듯한 인상”이라고 표현했다.

분양가는 34평형이 약 3600만원, 47평형이 약 6300만원, 64평형이 약 8600만원이었다. 아울러 수분양자들은 올림픽 기부금을 필수로 내야 했다. 올림픽선수촌 분양은 ‘기부금부 입찰제’로, 기부금 약정을 많이 한 순서대로 아파트를 분양해주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가구별로 500만~3000만원의 기부금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분양은 1987년 3월부터 1988년 5월까지 5차례, 1년여에 걸쳐 이뤄졌다. 온갖 청약 규제를 풀어 수요자가 몰리며 경쟁률은 높았는데, 기대보다 웃돈이 형성되지 않으며 계약에서 상당수가 포기해 미달이 발생했다고 한다. 1987년 3월 첫 분양에선 전체 5540가구 가운데 2796가구가 분양에 나서, 908가구(32%)만 분양됐다. 그해 5월 2차 분양에서도 4542가구 중 1458가구(32%), 같은해 9월 3차 분양에서도 3170가구 중 1328가구(39%)만 분양됐다. 서울시는 ‘서울올림픽대회 백서’(1990년 발간)에서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해 5540가구 대규모 공급 물량을 일시에 분양한다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었다”고 적었다.

지난 4일 찾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고성민 기자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찾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1층 입주자가 거실 발코니 전면부 공간을 독점해 쓸 수 있도록 특화 설계한 모습이 보인다. /고성민 기자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찾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경. 단지 내부에 성내천이 흐르고 있다. /고성민 기자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찾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엘리베이터엔 19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고성민 기자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찾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지하주차장의 모습. 서울시는 43평형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1가구 1면’, 1면당 285만원에 지하주차장을 함께 의무분양했다. 지금도 이 주차장은 가구별 전용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고성민 기자 <전체화면 버튼을 클릭하면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분양 당시인 1987년 6월 기준, 압구정현대 48평형은 시세가 8000만~1억원, 잠실우성 43평형은 7000만~8700만원이었다. 올림픽선수촌 47평형은 주차장 분양가와 올림픽기부금을 더해 약 7000만~8000만원 수준이었으니 당시에도 꽤 고가 아파트였다. 올림픽선수촌은 지금도 전용면적 83㎡(34평형)가 24억7000만원에 거래되는 고가 단지다.

올림픽선수촌은 재건축을 추진하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입지가 좋고 5540가구 대단지에다 용적률(137%)이 낮아 ‘잠룡’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재건축 연한(30년)을 채웠고, ‘올림픽선수촌 재건축 모임’이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아직 토지 등 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해 추진위원회가 공식 출범하지 않은 사업 초기 단계다. 지난해 3월 1차 안전진단을 통과했고, 2차 안전진단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