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이 추진되는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수주전에 삼성물산이 등판할 것인지에 건설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단독 수의계약이 가능한 정비사업만 수주하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번 수주전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에 나설 경우 올해 정비사업 수주전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에 열린 흑석2구역 현장설명회에 삼성물산이 참여했다. 설명회에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등도 참석했다.

흑석2구역은 흑석동 99의3번지 일대에 4만5229㎡ 부지에 추진되는 공공재개발 사업이다. 시행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맡게 된다. SH는 재개발을 통해 지하 7층~지상 49층 높이의 아파트 1216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정도 규모가 되는 사업은 서울 내 많지 않은 데다, 1호 공공재개발이라는 상징성도 있어 건설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2구역 모습.

건설사들은 특히 삼성물산의 행보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지만 지난해 총수 재판 등의 여파로 정비사업 수주전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삼성물산이 다시 시동을 거는 듯한 신호가 포착되고 있어서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서울 도곡삼호 재건축(915억원) ▲부산 명륜2구역 재건축(1891억원) ▲서울 고덕아남 리모델링(3475억원) ▲서울 금호벽산 리모델링(2836억원)을 모두 단독 수의계약으로 수주했다.

삼성물산은 또 지난해 10년 만에 주택사업부 출신 인사를 부사장단에 올리기도 했다. 김상국 건축토목사업부 부사장이다. 김 부사장은 2010년 주택마케팅팀장을 거쳐 2014년 분양팀장, 2016년 주택영업팀장을 역임한 주택사업 전문가다. 삼성물산이 ‘왕의 귀환’을 선언했던 2020년에 신반포 15차(래미안 원펜타스)와 반포 주공1단지 3주구(프레스티지 바이 래미안) 공사를 따는 데 기여했다.

현재 흑석2구역에서 삼성물산의 움직임은 꽤 적극적인 모양새다. 홍보관 설치 준비 작업도 다른 건설사 대비 빠르게 나선 편이다. 그만큼 견제도 거세다. 흑석2구역의 일부 조합원은 삼성물산이 이미 SH와 모종의 교감을 이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삼성물산이 홍보관을 설치하는 날짜와 규모 등을 다른 건설사보다 먼저 알고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실제로 문제가 될 만한 지점은 아니다”면서 “그만큼 이번 사업을 둘러싸고 삼성물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견제가 큰 만큼 삼성물산이 흑석 2구역을 가져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흑석9구역이나 이촌동 한강맨션 수주전에서 발을 빼면서 ‘클린 수주’를 앞세웠다. 당시 경쟁이 과열돼 브랜드나 회사 명성에 누를 끼칠 만한 가능성이 있다면 수주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경쟁이 과열 조짐을 보일 경우 수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예전엔 삼성물산이 등판하면, 어차피 삼성물산이 수주를 딸 것으로 보이니 다른 건설사들이 ‘알아서 빼는 관행’을 보이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삼성물산이 클린수주를 최대 화두로 내세운 만큼 다른 건설사 입장에서는 경쟁을 격화시켜 삼성물산을 이기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삼성물산이 ‘클린수주’에 집중하는 것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래미안’ 브랜드와 ‘삼성’ 브랜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주엔 나서지 말자는 것이 대원칙이다. 여기에 기업 내부 사정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해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여전히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혐의와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 중 하나는 그룹 승계를 용이하게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가장 유리한 때에 했다는 점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 관계자들은 합병 당시 래미안을 필두로 한 주택사업에 대한 비관론을 보이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새로운 시너지를 예고했고, 이 합병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데 래미안이 갑자기 이 시점에서 영화로웠던 과거를 재연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라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정비사업 수주전에 나서면서 선별수주와 클린수주를 하겠다는 것이 건설사 논리로 불가능하지만 삼성물산이 이런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그룹 논리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