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 이전에 매도인이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사무소 등)로 용도변경해주는 조건으로 나온 단독주택 매물입니다. 보유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지난 10월 24일 촬영된 서울의 한 빌라촌 전경. /연합뉴스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단독, 다가구 등 이른바 ‘비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용도를 주택에서 근린생활시설(근생)로 변경하고 매각하는 형태의 거래가 유행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가 최근 투자자 몇 명을 모으고 개최한 투자설명회에 기자가 참석해보니,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한 단독주택 매물을 설명하며 이런 매각조건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면서 ‘잔금 전 근생으로 용도변경’ 매각이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근생은 음식점, 사무소, 소매점 등 주택가와 인접한 곳에서 주민 생활 편의를 도울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게끔 지정한 용도를 말한다.

근생은 부동산 시장에서 비주류 상품으로 꼽힌다. 임차인이 주민이 아닌 상인이어서 입지분석이 상권분석으로 이뤄져야 해 수익률을 따지기 어려워서다. 이런 근생이 매매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주택 규제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7·10 부동산대책에서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와 양도세 규제를 강화했다. 이 법은 지난 6월 시행됐고, 아울러 종합부동산세(종부세)도 강화돼 주택 보유세 부담이 커졌다. 주택 대출도 까다로워졌다. 그러자 수요자들은 주택을 구입해 전·월세를 받는 수익보다 세금으로 내는 금액이 많다고 판단, 주택을 근생으로 용도를 바꿔 매입하는 것이다.

주택을 근생으로 용도변경하려면 구청의 허가가 필요하다. 주택 건축기준과 근생 건축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화조 용량 증설 등 근생 건축기준에 맞게 대수선을 거쳐야 허가가 난다. 그래서 통개발이 가능한 단독이나 다가구(호실은 여러 개지만 건물 소유주는 1명)를 근생으로 용도변경하는 사례가 많다. 다세대(가구별 구분등기)도 건축기준을 충족하면 용도변경이 가능하지만, 다른 소유주 전원 동의가 있어야 해 쉽지 않다.

용도변경은 건축사사무소를 통해 통상 300만~1000만원의 비용으로 진행된다. 근생을 주택으로 쓰면 불법이라 주택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고, 용도변경 이후엔 통상 지하층이나 반지하층, 1층에 상가나 소매점을 두고 2층 이상엔 사무실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선 용도를 바꿔놓고 공실로 방치하기도 한다. 주택을 보유했다간 ‘세금폭탄’을 맞게 되니 차라리 보유세를 피하며 시세 상승만 노리는 생각이다.

특히 ‘잔금 전 용도변경’은 매도인 입장에서도 불리하지 않아 매수·매도 양쪽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유행하고 있다. 매도인은 주택으로 매각해야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원칙적으론 양도일 기준으로 주택이어야 하지만 매매계약 특약사항으로 매수자가 용도변경을 약정하고 매수할 경우 계약일을 기준으로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매수인은 잔금일 기준으로 주택이 아닌 근생을 취득하는 것이라 취득세 중과를 피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매도자는 양도세 일반세율을 적용받고, 매수자는 비주택 취득세 4.6%만 내면 돼 매수자와 매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방식”이라면서 “옛날에는 ‘뜨는 상권’에서 상가로 개발하기 위해 근생으로 용도변경을 주로 했다면, 요즘엔 양도세와 취득세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근생으로 용도변경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단독주택이 근생으로 바뀌는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전국 1만272가구 단독주택이 용도변경됐다. 이는 세움터가 관련 통계를 발표한 이후 역대 최고치다. 단독주택이 용도변경된 건수는 2015년 7415건, 2016년 6025건, 2017년 6086건, 2018년 7021건, 2019년 7224건 등 6000~7000건을 오가다 지난해 최초 1만건을 넘었다. 사무소(근생)로 용도변경된 건수도 지난해 7186건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2015년 3276건, 2016년 3186건, 2017년 3135건, 2018년 3787건, 2019년 4548건 등에서 급증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단독·다가구·다세대 빌라들은 주택수에 포함돼 종부세가 부과되는데, 근생은 종부세 대상에서 벗어난다”면서 “최근 종부세 부담이 커지며 시장에선 주택을 근생으로 바꾸려고들 난리”라고 말했다. 이어 “구청에선 주택 세입자가 있으면 근생으로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아, 근생 용도변경 전에 기존 주택 세입자는 쫓겨 나간다”면서 “결국 주택 규제 강화가 근생 용도변경을 엄청나게 만들며 주택을 사라지게 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택 규제를 계속 ‘중중과’로 강화해 왔는데, 시중에는 돈이 굉장히 많다”면서 “주택을 사면 대출이 안 나오고 종부세도 내야 해 근생으로 용도변경해 매매하는 자금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