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에 결혼하는 정모(29)씨는 요즘 신혼집 인테리어 견적 내기에 한창이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구축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인 정씨는 각종 카페·블로그나 인테리어 어플 등을 통해 부부의 취향에 맞는 도면을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중이다.

정씨는 “한정된 자금 사정으로 신축 아파트 입주는 언감생심이더라”라면서 “비용이 들더라도 낡은 아파트를 새 아파트 못지 않게 잘 고쳐 살자는데 예비 신랑과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어반베이스의 3D 인테리어 서비스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이미지. /어반베이스 제공

지난달 결혼해 전셋집에 들어간 곽모(35)씨 부부는 약 2000만원을 들여 이곳 저곳을 손봤다. 집값이 너무 비싸 신혼집으로 구축 전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내부 인테리어만큼은 신혼집 분위기를 팍팍 내보자는 취지였다. 곽씨는 “요즘엔 전세라도 대부분 4년은 살 수 있지 않느냐”면서 “나중에 돈을 모아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을 매수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가파르게 오른 집값에 MZ세대의 개성적인 공간 활용 욕구가 맞물리면서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27조5000억원이었던 국내 인테리어 시장 규모는 지난해 41조5000억원으로 5년만에 약 50% 성장했다. 건산연은 오는 2023년에는 시장 규모가 49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거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 성장이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웬만한 수요자는 접근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올라버린 신축 아파트값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서울의 입주 5년 이내 신축 아파트 평균가격은 17억3631만원으로 ‘대출불가선’을 훌쩍 넘어섰다. 10년 초과 구축 아파트 평균가격은 12억6178억원으로 조사됐다.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는 평면이나 공간활용과 같은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 서울·수도권 신축 가격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수준이다보니 ‘구축을 신축처럼’ 바꾸는 인테리어 리모델링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테리어 업계 한 관계자는 “신축 아파트로의 주거 상향이 어려워진 만큼 구축 아파트에 지출하는 인테리어 비용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아예 내력벽만 빼고 전부 갈아엎어 집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인은 코로나19로 자택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부 공간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재배치하려는 MZ세대의 욕구가 높아졌다는데 있다. 한 프롭테크 기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단지 ‘침실’이나 ‘작은 방’ 등으로 공간을 구분하는데 그쳤다면, 요즘에는 ‘내가 휴식을 취하고 넷플릭스 등을 시청하는 공간’이라거나 ‘재택근무 시간에 집중해서 업무를 보는 공간’ 등으로 구체화됐다”면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집을 꾸미려는 욕구가 표출되고 있다”고 했다.

한샘디자인파크 롯데메종 동부산점 'VR체험존'. /한샘 제공

이에 관련 업계도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주목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한샘은 인테리어 패키지 사업인 ‘한샘 리하우스’의 대리점을 지난 2019년 131곳에서 현재 682곳으로 늘렸고, 디자이너 인력도 1년만에 두 배로 늘렸다. 최근에는 리하우스 전용 은행대출 서비스까지 도입했다.

한샘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방 가구·설비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리하우스 사업부가 사내 실적 1위를 차지하는 상황”이라면서 “토털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게 하루하루 체감이 될 정도”라고 했다.

현대리바트도 건자재 계열사 현대L&C와의 연계해 이르면 올해 연말부터 주방과 창호, 욕실, 마루 시공 서비스 등 인테리어 전반을 제공하는 종합 인테리어 패키지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인테리어에 IT기술을 접목한 프롭테크 스타트업들도 성장세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홈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는 지난 9월 구주 매각에서 기업가치가 1조1000억원으로 매겨지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반열에 올랐다.

오늘의집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올해 상담건수가 50%가량 늘어났다”면서 “특히 탈서울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하남·위례·평촌 등 신도시에서는 상담건수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간 데이터 플랫폼 ‘어반베이스’는 3차원(3D) 인테리어 서비스 가입자가 지난해 대비 올해 1~9월 251% 증가했다. 3D 인테리어 서비스는 살고 있는 아파트 주소만 입력하면 3D 도면이 나타나고, 그런 가상공간에 원하는 벽지와 가구 등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누적 투자 230억원을 유치한 어반베이스는 현재 코스닥 기술상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