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최근 신규 입주자를 모집한 ‘장기미임대 매입임대주택’이 무단 점유된 상태로 방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새 입주자가 사전 점검차 해당 주택을 방문해 이런 상황을 목격하기 전까지 SH는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금천구의 한 SH 매입임대 주택에 무단 점유한 흔적이 남아있는 모습. /황모씨 제공

올해 초 SH가 공급한 강서구 화곡동 임대주택이 장판이 뜯기고 쓰레기가 널브러진 상태로 예비 입주자를 맞이해 비판을 받은 가운데, 비슷한 문제가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이에 SH가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데만 주력하고, 기매입한 주택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관리조차 소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SH는 지난 11월 1일 장기미임대 매입임대주택(다가구, 원룸) 88가구에 대한 입주자 수시모집을 진행하고 같은 달 23일 입주 당첨자를 발표했다. 장기미임대 매입임대주택은 6개월 이상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공가로 방치된 주택이다.

이 가운데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 임대주택에 당첨된 황모(28·여)씨는 지난 24일 사전점검에서 자신이 입주할 집에 누군가 거주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황씨는 “과일과 생수병, 버너 등 이 집에서 취식을 한 흔적과 의류, 마스크, 이불 등의 생활용품이 집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심지어 오줌이 묻어 악취가 나는 강아지 배변패드까지 발견됐다”면서 “당장 집 안에서 누가 갑자기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진 몇 장만 찍고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의 한 SH 매입임대 주택에서 발견된 강아지 배변패드에 사용된 흔적이 역력하다. /황모씨 제공

인근 카페로 피신한 황씨는 임대주택 관리를 담당하는 SH 지역센터에 연락해 해당 상황에 대한 설명과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센터 측은 “나중에 확인해보겠다”는 식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세 번이나 거듭 전화하고서야 센터 관계자로부터 “옆집 할머니가 자기 짐을 보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짐을 치운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사전점검을 해보시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황씨는 이러한 설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집 안에 있었던 취사도구나 옷가지, 이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단순히 짐을 두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리 잡고 살던 사람, 그것도 남성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만약 모르는 남성이 카드키 같은 것으로 문을 열고 드나들었다면 그 집에서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 있겠나”고 했다.

SH 지역센터 측이 황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황모씨 제공

이에 대해 SH 측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공사의 명백한 관리부실 문제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인정했다. SH 관계자는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무단 점유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옆집 주민에 대해 행정·법률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해당 입주 예정자에 대해서는 “입주 청소와 도배, 장판 등 집을 정상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보수 조치를 제공하겠다”면서 “따로 카드키가 있지는 않은 주택으로 염려하시는 문제는 없을 것이며, 이외에 보안을 강화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입주자를 모집하기 전에 해당 주택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기본적인 관리 절차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SH 관계자는 “공급 전에 관리·점검을 진행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신축에 속하는 임대주택은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외주업체를 고용하는 등 내년까지 관련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