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조합원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시공사들이 조합원 분담금 납부 방법을 입주시 100%로 변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이 진행되면 조합원들은 조합원 분양가에서 권리가액을 뺀 금액은 분담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통상적으로는 계약금(20%), 중도금(60%), 잔금(20%) 순의 과정을 거치는데, 잔금만 100% 입금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조합원들은 무이자 대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15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주택가 모습/연합뉴스 제공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인천 재개발 사업지 부개4구역의 시공사 DL이앤씨는 지난 10일 조합원들의 중도금 납부 방식을 기존 잔금(10%), 중도금(60%), 잔금(30%) 방식에서 잔금 100% 납부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는 공문을 조합 측에 보냈다. 이는 지난 3일 조합 측이 조합원 의견을 모아 시공사 측에 잔금 납부 방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데 따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들은 부개4구역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조합원 납입금을 모두 넣으면 된다. 자금이 부족한 조합원은 전세를 주고 잔금을 치룰 수도 있다. 부개4구역의 잔금 조건이 변경되자 부개2구역을 비롯한 인근 정비사업지 조합원들도 시공사 측에 잔금 납입 방식을 바꿔달라는 요구에 나서고 있다. 이미 잔금 100% 조건을 제시한 시공사를 선정한 곳도 있다. 경기도 남양주 덕소3구역이나 인천 용현4구역이 대표적이다.

시공사들이 금융부담을 감안하고도 조합의 잔금 100% 조건을 수용하는 이유는 수주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로 이주비 대출이나 중도금 대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원칙적으로는 조합이 이를 해결해야 한다. 조합과 조합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 하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이 부분의 해결책까지 제시해 입찰에서 시공사로 선정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잔금 100% 납입 조건을 갖춘 사업지는 조합원이 중간에 입주권을 매도하더라도 매수자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프리미엄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이런 점을 감안해 조합에서는 잔금 100% 조건을 적극적으로 시공사에 요청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수주전에 나서면서 잔금 100%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전에 수주계약을 맺은 조합에서 조건이 같지 않다고 항의를 표시하면 아무래도 같은 조건으로 응하게 된다”면서 “안 그러면 시공 계약 해지 같은 문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심리가 관망세에 접어들면서 잔금 100% 조건을 갖춘 정비사업지의 프리미엄 호가는 예전만 못하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부개4구역의 전용면적 74㎡짜리 입주권을 받는 경우, 올해 초 프리미엄이 3억원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2억6000만~2억7000만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덕소3구역의 경우 작년 11월 GS건설·대우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 프리미엄이 3억원 수준을 기록했는데 최근 1000만~2000만원 낮추더라고 매매에 나서겠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근 K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금이나 대출 규제,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서 프리미엄만 실현화하겠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확산하고 있다”면서 “프리미엄을 살짝 낮추면서도 매도에 나서려는 이들은 다주택자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이주까지 다 완료가 되더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오면 준공까지 기간이 차일피일 미뤄지기도 한다”면서 “지금 매도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은 이런 불확실성은 피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의 경우 이주가 거의 완료됐지만 오염토 문제와 비례율을 둘러싼 조합원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